딘 쿤츠는 어떻게 해서 스티븐 킹에게 패배했는가?


유혹하는 글쓰기, 스티븐 킹. 김영사.
베스트셀러 소설 쓰는 법, 딘 쿤츠. 문학사상사.



안녕하세요. ‘메타서사연구가’라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타이틀을 마음대로 가져다 붙인 소설가, 번역가, 서평가 손지상입니다. 
이번 화를 시작으로 격월로 온우주 소식지 지면을 통해 제가 전해드릴 글은 ‘작법서 참고서’입니다. 
각종 매체와 장르의 작법서를 200여 권 읽어온 (돈 낭비한!) 제가 작법서를 선정해서, “이 작법서는 이런 용도에 이런 목적으로 이런 내용에 집중해서 보시길 바랍니다.” 하고 분석해 알려드리는 글입니다. 나사못에는 드라이버와 같이 도구는 사용 목적과 용도가 있습니다. 그러나 작법서라는 도구는 이 목적과 용도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여러 작법서를 실제로 적용해보며 아직도 암중모색 중인 제가, 메타적으로 각 작법서가 어떤 용도와 어떤 목적으로 사용하면 좋을지를 설명해드리고자 합니다. 이것이 저의 목적입니다.


『유혹하는 글쓰기』가 그저 흥미로운 읽을거리라는 오해

첫 번째 이야기에서 저는 『유혹하는 글쓰기』와 『베스트셀러 쓰는 법』 두 권을 선택했습니다. 작자는 미국 대중소설계의 큰 형님인 스티븐 킹과 딘 쿤츠로, 두 사람에 대한 설명은 제가 구태여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이 둘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사람이라면 아마 온우주 소식지를 읽고 있지 않을 테니까요.)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내용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 플롯을 중시하던 딘 쿤츠가 왜 스토리를 중시하던 스티븐 킹 방식으로 돌아섰는가. 
, 애초에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말하는 플롯이나 스토리란 도대체 무엇인가 입니다.

딘 쿤츠가 스티븐 킹 방식으로 돌아섰다? 이에 대해서 설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2012년 12월, 딘 쿤츠는 텔레비전 특집 방송에서 그동안의 작가 인생에 대해 인터뷰를 했습니다. 인터뷰 내용 중, 딘 쿤츠는 “나는 더 이상 시놉시스나 플롯을 미리 짜지 않고, 인물이 자유롭게 움직이게 한 뒤 이를 기록하듯 글을 쓴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이 말을 듣고, 베테랑 중의 베테랑 딘 쿤츠도 결국 『유혹하는 글쓰기』로 ‘귀의’했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딘 쿤츠도 알아보는 이 책의 진가를 사람들이 몰라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책이 작법서로는 별로고, 그저 재미있는 읽을거리에 불과하다는 식입니다. 심지어 인터넷에서 인기 있는 모 위키피디아에서도 그런 식으로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개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사실 저도, 제가 태어나서 맨 처음으로 읽었던 작법서다보니 진가를 몰라보고 그저 하라는 대로 따라하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압니다. 이 책이 얼마나 ‘비급’인지를. 
이 책이 과소평가되고 오해를 받는 이유 중 하나는 이 책에서 말하는 스토리와 플롯의 개념을 보통 오해하기 때문입니다.



스토리와 플롯부터 재정의하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

그래서 두 번째로 오해를 풀기 위해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말하는 스토리와 플롯에 대한 설명을 할까 합니다. 이를 먼저 한다면, 자연스럽게 첫 번째 목적도 달성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실 이 두 개념은 아직도 명확히 정의된 것이 아니고, 너무 두루뭉술하게 이해되어 명확히 정의된 바가 없습니다. 이는 이 책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저는 일단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말하는 스토리와 플롯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로 한정지어 글을 진행하겠습니다.
스토리는, 적어도 스티븐 킹이 이야기한 스토리는, 등장인물을 중심으로 시간 순서대로 진행되는 사건의 연속입니다. 여기서 포인트는 바로 인물입니다. 
『유혹하는 글쓰기』 198쪽에서 199쪽 사이에는 이런 말이 나옵니다. 

내가 보기에 소설은 장편이든 단편이든 세 가지 요소로 이루어진다. A지점에서 B지점을 거쳐 마침내 Z지점까지 이야기를 이어가는 서술 narration, 독자에게 생생한 현실감을 주는 묘사 description,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말을 통하여 그들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대화 dialogue가 그것이다. 
그렇다면 플롯은 어디 있느냐는 질문이 나올 법하다. 대답은—적어도 내 대답은—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중략) 나는 두 가지 이유 때문에 플롯이라는 것을 믿지 않는다. 첫째, 우리의 ‘삶’ 속에도 (설령 합리적인 예방책이나 신중한 계획을 포함시키더라도) 플롯 따위는 별로 존재하지 않으므로, 둘째, 플롯은 진정한 창조의 자연스러움과 양립할 수 없다고 생각하므로, 이 문제에 대해서는 분명히 짚고 넘어가는 것이 좋겠다. 소설 창작이란 어떤 이야기가 저절로 만들어지는 과정이라는 것이 나의 기본적인 신념이다.


스티븐 킹의 이 말에, 오늘 제가 드릴 말은 전부 들어가 있습니다. 이제 하나하나 해설해보도록 하죠. 



사람이 있어야 소설이 산다


스티븐 킹이 말한 세 가지 요소 서술, 묘사, 대화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사람입니다. 

서술이라고 쓴 내레이션은 당연히 내레이터, 서술자를 필요로 합니다. 애초에 왜 내레이션을 할까요? 독자 들으라고 하는 것이지요. 

묘사는 어떤가요? 우리나라에서는 뭔가 애매모호한 어감이라 뭐든 다 묘사라고 하는데, 저는 묘사보다 “관찰 보고서”가 차라리 더 정확한 어휘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감을 통해 관찰한 결과를 언어로 변환시켜 보고하듯 전달한다는 이미지입니다. 따라서 관찰하는 사람을 전제로 하겠지요. 여기에 주관이 들어가느냐 아니냐에 따라 1인칭 시점이 되기도 하고 카메라 같은 객관적 시점이 되기도 합니다. 공통되는 부분은 관찰하는 주체를 전제로 한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관찰 보고는 누구에게 하나요? 다 독자 들으라고 하는 것이지요.

대화는 어떤가요? 말할 필요 있나요? 이건 독자 들으라고 하는 면도 있지만, 애초에 대화 자체가 두 사람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말할 나위 없습니다.

세 가지 요소는 모두 사람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중심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조금 더 부연하자면 여기서 말하는 ‘사람’은 이야기 내에 있는 경우도 있고, 외부에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소설은 언어로 구축하는 서사고, 언어는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 없이 독자적으로는 존재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흔히 화자라고 하지요. 화자가 자신의 감정을 덧입혀서 서사를 전달하고, 이를 통해 감정이입을 만들어내는 것이 곧 소설의 ‘문학적’ 힘입니다. (그래서 영화에서 ‘문학적’으로 보이고 싶을 때, 손쉬운 방법으로 보이스오버 내레이션을 넣어 전체를 통일하는 ‘목소리’를 집어넣지요.) 결국 언어, 활자란 발화 상황과 발화자의 신체적인 감각과 기억에 의존해 의미를 전달합니다. 사람이 없다면 언어는 공허해집니다. 시놉시스와 소설의 차이는 여기에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사람이 필요한 또 다른 이유는 감정 때문입니다. 소설은 언어로 감정을 움직이게 하려는 시도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애초에 감정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을 때 일어나는 생리적인 반응이고, 사람을 대상으로 쉽게 일어납니다. 따라서 감정의 대상이 될 타인이 없이는 감정이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 최소한 어떤 형상을 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많은 종교가 특정한 형상을 기도의 대상으로 삼지요. 사람은 감정과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일종의 인터페이스인 셈입니다. 따라서 감정을 크게 일으키고 싶다면, 이야기 밖에서 말하는 화자의 목소리, 그리고 이야기 안에서 말하는 등장인물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그릴 필요가 있습니다.

문체란 이야기 밖의 화자가 내는 목소리, 스토리란 이야기 안의 등장인물들이 내는 목소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플롯은 어떨까요? 잠깐, 그전에 플롯은 무슨 뜻일까요? 영어 플롯에는 원래 일이 미리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도록 짠 음모, 계획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스티븐 킹은 이 의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삶에는 플롯이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합리적인 예방책, 신중한 계획은 있을 수는 있지만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지는 게 삶이고, 그래서 미리 정해진 방향대로 계획이나 음모를 짜서 그리로 억지로 끌고 가는 것은 부자연스럽고 좋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창조의 자연스러움과 양립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게다가 계획을 세워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계획이란 상당히 추상적입니다. 인물이 없더라도 세울 수 있습니다. 감정을 움직이기에는 충분하지 못합니다.

더 쉽게 이야기하자면, 스티븐 킹은 결말에서 역산하는 식의 스토리 구성을 플롯이라고 부릅니다. 이는 좋지 못하다고 하지만, 사실 스티븐 킹 자신도 대표작인 『데드존』 같은 걸작에서 이런 방식의 구성을 사용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조차도 등장인물의 목소리와 감정을 섬세히 묘사하고 있습니다. 요는 얼마나 사람을 중심으로 작가가 상상력을 전개하느냐에 있겠습니다.


딘 쿤츠는 처음에는 플롯을 중시했습니다. 딘 쿤츠는 자신의 두 번째 작법서 『베스트셀러 소설 쓰는 법』에서 등장인물이 제멋대로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식의 소설 창작은 좋지 못하며, 예술가가 직접 상황을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엄격히 짜놓은 플롯이 없으면 제대로 된 작품이 나오지 않는다고요. 실제로 그는 20대 때 데뷔한 이후 단단히 플롯을 짜고 난 뒤 집필에 들어간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그런 그가, 2012년 12월 인터뷰에서 자신은 이미 20년 전부터 플롯 위주의 글쓰기가 아니라 등장인물에 집중해 그가 어떻게 사건을 끌어나가나 관찰하고 그의 이야기를 듣는, ‘스토리’ 위주의 방식으로 집필 방식을 바꾸었다고 밝혔습니다. 여담인데,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저는 화가 나서 욕을 내뱉었습니다. 당신 말 믿고 얼마나 노력했는데! 하고요. 대표적인 예로, 국내에서는 4권까지 번역되고, 미국에서 만화화되기도 한 ‘오드 토마스 시리즈’가 있습니다. 국내에는 4권까지 번역이 되었는데, 영능력자 오드 토마스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입니다. 또 다른 예로는 국내에서는 크게 빛을 크게 보지는 못했지만, 얼마 전 개봉한 영화 <프랑켄슈타인>이 있습니다.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한 활극으로 딘 쿤츠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소설은 꽤 히트를 친 모양입니다. 이 소설들은 딘 쿤츠가 스스로 패배선언을 한 것이나 다름없는 소설들입니다. 플롯 위주보다 스토리 위주가 더 좋다고.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플롯이 아예 필요가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등장인물에 집중하는 편이 독자에게나 작가에게나 즐거운 경험을 선사한다는 것입니다. 딘 쿤츠는 인터뷰에서 처음에는 일일이 시놉시스를 짜서 편집자에게 제출하고는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시놉시스와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되어버리기 일쑤였고 달라진 이야기가 훨씬 재미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시놉시스를 미리 쓰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즉 미리 계획하지 않는다는 말이지요. 



인물과 플롯이 합쳐져야 스토리가 생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중요한 것은 상황입니다. 어떤 인물이 어떻게 행동할지는 상황에 달려 있습니다. 특이한 인물을 특이한 상황에 밀어 넣어보세요.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그 등장인물의 존재감, 특이한 점, 남다른 점, 독특한 점, 공감 갈 만큼 평범한 점, 버릇 같은 것을 생생히 떠올릴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를 언어로 표현하는 게 먼저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의 친구를 설명할 때 말로 이러이러하다, 라고 정의 내리나요? 애매모호하고 특정한 사건은 떠오를지 몰라도 이렇다, 라고 하기에는 사람은 너무 복잡하지 않나요? 그래서 보통 이렇게 설명하지 않나요? 

“걔는 라면 먹다 국물이 뜨거워도 국물부터 먹는다고 정했으면 입천장 다 데어도 국물부터 먹는 애야.”

“걔는 친구냐 여자냐 하는 상황에서는 꼭 여자를 택해. 그래놓고 나중에 몰래 와서는 내 맘 알지, 그런다니까?”

어떤가요?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는가, 그 사람이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가와 같은 상황에 반응하는 모습을 통해 그 사람의 성격을 정의할 수 있습니다. 딘 쿤츠도 자신의 책에서 성격묘사는 이렇게 행동을 통해 묘사해야 한다고 밝힐 정도였으니까요. 

성격을 정하기 위해서는 먼저 상황을 정해야 합니다. 상황은 얼핏 계획과 마찬가지로 추상적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실제로 상황은 매우 한정적이어서, 클리셰나 다름없습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하는 가는 그 개인이 살아온 인생과 갖추고 있는 성격에 따라 천차만별입니다. 여기서 개성, 존재감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각에서 다시 한 번 『유혹하는 글쓰기』를 읽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새로운 시각으로 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스토리란 결국 인물이 다른 인물과 서로 이해관계가 충돌해서 벌어지는 일의 과정입니다. 새로운 일이 터지지 않으면 스토리는 진전되지 않지요. 하지만 스토리를 위해서는 타인이 항상 전제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플롯을 중시하던 딘 쿤츠는 이렇게 패배하였고, 플롯과 스토리의 조화를 찾게 되었습니다. 작가 생활 35년 만에 얻은 깨달음이었죠. 그렇다고 인물을 신경 쓰지 않은 것은 절대 아니에요. 그가 새파란 풋내기였다고 스스로 인정했던 20대 때 처음 쓴 작법서, 『카테고리 픽션 쓰는 법』에는 인물도, 인물이 품고 있는 가치관이자 세계관인 주제도 다루지 않는다고 못을 박고 책을 시작했을 정도입니다. 당연히 인물에 대한 이야기는 한 마디도 없었습니다. 과학소설, 고딕소설, 로맨스소설 등등 인물의 깊이가 요구되지 않는 세계에서 글을 쓰던 작가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그가 미국의 메인스트림 노벨, 다시 말해 대중소설의 세계에 뛰어들고 나서야 그는 인물을 깊이 있게 다루는 것이야 말로 소설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최고 수준의 작가가 되었지요. 그 경험을 살려 쓴 작법서가 『베스트셀러 소설 쓰는 법』입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인물과 이야기가 따로 노는 소설을 써왔습니다. 결론을 이미 정해놓고 쓰는 글쓰기였지요. 나쁘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 결론이 작위적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지요. 소설의 핵심인 인물과 소설의 흐름인 플롯이 합쳐질 때, 스토리가 생겨납니다. 딘 쿤츠는 드디어 이를 깨달았고, 자연스럽게 사람을 중심으로 한 소설을 쓸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마치


저는 『베스트셀러 소설 쓰는 법』을 추천하지 않습니다. 분명 좋은 책이지만, 중역본에다가 발췌번역을 했거든요. 하지만 플롯의 중요한 점, 플롯 구성하는 요령, 작가로서의 자세, 장르별 특징, 문체의 특징 등 알아야 할 기술이 잔뜩 들어 있는 좋은 책입니다. 

저는 『유혹하는 글쓰기』도 그냥 추천하지 않습니다. 사용하고 있는 용어의 의미가 명확하지 못해 실질적으로 도움이 못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소설가의 현실과 소설쓰기라는 삶의 방식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선불교 같은 책입니다. 매우 좋은 책이고, 반복해서 봐야 할 책입니다. 특히 사람을 중심으로 소설을 쓰는 법을 직접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래서 매우 좋은 책입니다. 

이 글은 일종의 주석인 셈입니다. 이 주석을 토대로 두 책, 특히 『유혹하는 글쓰기』를 이해하고 이를 여러분의 소설에 적용하기를 바랍니다. 더 나아가, 여러분의 소설이 더 강력해지기를 기원하면서, 글을 마칩니다. 







손지상

세미프로를 자처하는 소설가, 번역가, 자유기고가.

여러 장르의 작법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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