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지/11호 소식지

이 달의 작가 : 김주영 작가 인터뷰 ( 인터뷰 | 이서영 )

온우주출판사 2014. 10. 1. 23:04

세상의 틈새로 환상이 보일 때




부산역 앞에서는 누군가 계속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김주영 작가를 만나는 카페에까지 음악 소리는 계속 들려왔다. 나는 상당히 일찍 서울에서 출발했는데도 부산에 도착하자 벌써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는 시간이었다. 하늘이 곧 오렌지색으로 물들 시간, 낮과 밤이 뒤바뀌는 시간, 아주 약간, 세상에 틈이 보일 것만 같은 그런 시간 말이다.


“소설 속 주인공들이 별로 하는 게 없네요.”


김주영 작가는 깔깔거리고 웃음을 터뜨렸다. 사실 그녀는 자신이 쓰는 소설의 무게감에 비해서 정말이지 환하게 잘 웃는다.


“맞아, 특별히 뭐 하는 게 없죠.”


“심지어 자기 사고 안에서만 활동하는 애들도 있어요. 「백 마리째의 양」이나 「노래하는 늪」에 있는 주인공들은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사고 속에서만 활동하잖아요. 「별들이 빛나는 밤에」도 그냥 일상을 영위하는 거 말고는 하는 게 없고. 그냥 일상 속에서 담담하게 고독을 이야기하는 정도고.”


「노래하는 늪」에서 주인공이 이야기하는 어릴 적 친구였던 에스메랄다는 하늘에 있는 배를 타고 다니는 선장의 딸이다. 소설을 읽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이 주인공에게 어릴 적에 상상 속의 친구가 있었나 보다,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소설의 끄트머리에서 독자들은 아주 조그맣게 놀란다.


“어릴 때, 자기가 마법사의 딸이라고 하던 일도 기억나요? 자기 이름이 에스메랄다라고 그렇게 고집을 부리더니 제 아빠 오고 난 뒤엔 그 이름을 한 번도 말 안 합디다.”

“제가 그랬어요?”

“그랬어.” ― 「노래하는 늪」중


주인공과 에스메랄다가 사방을 돌아다니며 꿈을 꾸었던 것들은 모두 주인공의 머릿속으로 귀착된다. 주인공이 온전히 다스리고 있었던 세계의 그림이 완성되며, 그 작은 세계의 넓이는 끝 간 데 없이 거대해진다. 다만 주인공의 시선 밖에서 보았을 때는 그 놀라우리만치 거대한 세계가 보잘것없이 작았다는 것도 동시에 드러나는 것이다.


“왜 그럴까요? 환상소설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떠올리는 건, 큰 이야기들이잖아요. 아포칼립스물이라던가, 시공간이 무너지는 거대한 시대물이라던가, 세계를 크게 쥐락펴락하는 이야기들. 근데 주영 님 소설에서는 그런 환상이, 마녀가 나타나서 세계를 악으로 물들이는 게 아니라 초콜릿을 만들잖아요(「어떤 밸런타인데이」). 늪은 세상이 아니라 한 마을을 찾아오고(「노래하는 늪」), 세상을 조금 더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능력자들은 그 능력자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결국엔 일반 사람들에겐 알려지지가 않고(「사방들은 기다린다」). 그 점이 어떤 황홀감을 주는 것도 분명 사실인데, 그래도 좀 특이하지 않아요?”


“소재를 얻는 게, 문득 일상 속에 있다가 환상에 뛰어드는 것들을 떠올릴 때가 많은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당연히 소재가 일상적이고. 밤에 야시장 가 본 적 있어요? 그런 데 가면 사람들 표정만으로도 여기에 사람이 아닌 무언가 끼어들어 있을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어요. 제가 저번에는 차를 타고 가는데, 내비게이션이 고장이 나서 고가도로 한가운데에서 벽을 막 뚫고 가라고 나오는 거예요. 너무 황당해서 얘가 미쳤구나.”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김주영 작가도 잠깐 웃더니,


“그런데 미친 게 아닐 수도 있잖아요. 사실 이게 고장 난 게 아니라 정말 내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길을 얘가 가르쳐주고 있는 것일 수도 있잖아요. 환상이라는 게 멀리, 여기랑 다른 세계에 있는 게 아닐 수도 있어요. 아주 가까이 있는데 어느 날 문득 세상이 뒤틀려서 그게 보일 때가 가끔씩 있는 그런 거 말예요. 수많은 용오름 중에 하나쯤은 진짜로 용이 올라가는 걸 수도 있는데, 우리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가 않고.”


유클리드 기하학에 익숙해져서 세상이 점 · 선 · 면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우리의 눈에 요정은 나타나지 않는다. 가끔 어쩌다가 무언가 뒤틀렸을 때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세상의 틈새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의 소설 속에는 세상의 틈새에서 고개를 빼꼼히 내미는 존재들이 있다.



초월자(超越者)


“작가들마다 좋아하는 종류의 환상들이 있잖아요. 슈퍼히어로물을 좋아한다거나 좀비물을 좋아한다거나. 그런데 그 환상들에는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라는 게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종종 하거든요. 그런데 꼭 김주영 작가님 작품에는 모든 것에 달관한 이종의 존재가 많이 나와요. 천사(「파국」), 그림 속의 사람(「문이 열린다」)……. 이런 환상들에 특별히 매료되는 이유가 있을까요?”


“슈퍼히어로나 뭐 다른 걸 보면 전능한 힘을 가지고 뭔가를 막 바꾸는데, 그런 존재보다는 지혜롭게 아예 초월한 존재가 많죠. 모든 것에 대해서 이 우주의 섭리가 어떻게 이렇게 되는지, 어떻게 받아들이고 살아가야 할 것인지, 이런 초월자를 꿈꾸는 게 있어요. 제가 좀 제 또래들보다 현실에 발을 안 붙이고 있어서. 사실 제 나이면 보통은 삶에 굉장히 물들어 있거든요. 결혼생활에 대해 고민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고 어떤 학교를 보낼 것인가 계획하고. 그런데 저는 그렇지가 않다 보니까 추상적인 고민을 많이 해요. 인생이란 뭘까.”


느닷없이 세계적 주제가 툭 튀어나왔다. 그러게, 인생이란 뭘까.


“사람은 혼자 와서 혼자 가죠. 그런데 사람들은 엄청나게 발버둥을 쳐요. 삶이라는 건 짧은 순간이고 혼자 온 자들에게 주어진 선물 같은 순간인데, 왜 이렇게 발버둥을 치면서 사는 걸까. 최근에 엄기호 씨의 책을 읽었어요. 현대 사회는 ‘함의 과잉’ 시대라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공감 가더라고요. 지금 필요한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인데 이 시대는 너무 무언가를 성취해야 한다고 강요한다고, 사람들이 다들 이렇게 발버둥을 치는 게 내가 사람들에게 중요한 존재라고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잖아요. 그런 걸 생각해보면…… 어릴 때는 자기를 비운다느니 내려놓는다느니 그런 말들이 그다지 와 닿지 않았는데, 요즘 생각해 보면 사람이란 자기가 아닌 누군가가 되려고 계속 발버둥 치다가 죽을 땐 결국 자기가 되어서 죽는 것 같아요.”


언젠가 내가 돌아올 날을 기다린 것처럼 가지런하게 정리해 둔 내 물건을 보면서 외할머니가 줄곧 무언가를 몹시 기다리면서 살아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생각해보면 인생이란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잠들며 내일을 기다리고, 아침엔 버스와 지하철을 기다리고, 출근해서는 점심시간을 기다린다. 만나기로 한 누군가를 기다리고, 생일을 기다리고, 결혼식을 기다리고, 첫애가 태어나길 기다리고, 집 장만할 날을 기다리고, 돌아오는 명절에 찾아올 자식들을 기다리고, 그런 과정 속에서 삶은 모양새만 바꾼 기다림에 잠식되어 간다. ― 「노래하는 늪」 중


“개인으로서의 사람은 우주적으로 보면 아무것도 아닌 존재잖아요. 인생이라는 건 와서,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것을 수용하게 되면, 성숙하고 끝이 나는 것 같아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걸 받아들이기를 너무 힘들어하죠. 그 사실은 굉장히 큰 위안일 수도 있는데. 자기가 대단한 걸 하려고 애쓰다 보니까 너무 버거워지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 집착들에서 벗어난 존재들에 대한 환상이 있어요. 뭔가를 성취하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고 자기 존재가 뭐가 되려고 하지도 않고 특별히 뭘 하지도 않지만 오롯이 스스로의 존재만으로 설 수 있는 존재에 대한 환상. 초월한 존재들.”



그리고 위무받기


신 · 천사 · 신선 등의 존재는 인간과는 다르게 “오롯한” 존재들이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이들이 종교적인 존재들이기 때문에 가능하기도 하다. 예술과 종교는 매우 닮아있는 양식들이다. 삶에 있어서 이들은 필수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예술이 없어도 우리는 밥을 먹고, 신을 믿지 않아도 숨을 쉴 것이다. 그러나 삶은 언제나 그것만으로는 성립하지 않는다. 때때로 우리에게는 밥을 먹을 수 있게 하고 숨을 쉴 수 있게 하는 무엇이 필요하다. 빵만이 아니라 장미도 필요하다고 외치는 사람들이 있었듯이, 아니, 김주영 작가의 시선은 장미조차도 넘어선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은 예술적인 것이며 종교적인 것이기도 하다.

초월적인 세계를 지향하는 사람들은(그것은 환상일 수도 있을 것이고 진리일 수도 있을 것이고 신일 수도 있을 것이다) 자신의 삶 속에서 어떻게든 고통을 견디기 위한 진통제로서 그것들을 받아들이기도 하고,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삶의 핵심을 폭발시키는 맥락에서 받아들이기도 한다. 그것은 외롭고 고통스러운, 김주영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혼자 왔다가 혼자 가는” 삶 속에서 진정한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이 되어주기도 한다.


“아포칼립스물을 쓰는 사람들한테는 환상이 일상을 뒤흔드는 악재 · 재앙으로서 기능하잖아요. 하지만 주영 님 소설 속의 환상은 언제나 다정해요. 직접적으로 주인공의 삶을 뒤흔드는 역할이 아니더라도, 어떤 방식으로든 위로하는 역할을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초월적인 존재니까. 그 존재는 따뜻하게 감싸 안고, 다 그런 거야, 이렇게 달래준 다음에 갈 수 있죠.”


그림 속에 있는 문이 열렸다.

그림 속에 있는 문에서 그가 나왔다.

― 네 할아버지 말씀대로구나. 인간은 이렇게 빨리 자라는구나.

그가 말했다. ― 「문이 열린다」중


인간의 고통이란 비역사적이다. 그 자신에게는 매우 중요한 문제고 견딜 수 없다고 할지언정, 한 인간의 고통은 우주적 규모로 봤을 때는 아주 작은 티끌만도 못한 일이다. 우리는 모두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의 고통은 우주의 역사를 구성하는 데는 정말 하잘 것 없는 편린이다. 그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고통이나 고독이 영속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 괴로움은 하나의 삶에서 끝이 날 것이며 그것은 우주적 파장으로 번지지 않는다. 그저 그 안에서의 소용돌이일 뿐이다. 그것은 김주영 작가의 소설 안에서 일종의 종교적 깨달음이자 큰 위안이다.


“처음 이런 종류의 환상을 생각하셨을 때는 언제예요?”


“그게…… 참.”


멋쩍게 웃었다.


“제가 글을 쓰기 시작한 게, 중학교 때 친구들이랑 돌아가면서 소설을 써서 공책 돌려보고 뭐 이런 거였어요. 그때 제일 재밌게 썼던 게 주인공이 우리였어요. 우리의 일상은 단조롭고 고통스러웠는데, 환상들이 우리를 위로해 준 거죠. 친한 친구들 일곱 명이 등장해서 기억이 봉인된 채 미래세계 어딘가에서 옛날의 행복했던 기억을 찾아 모험을 한다던지.”


“……이고깽이요?”


여러분, 김주영 작가의 첫 소설은 이고깽이었다고 합니다. 대충 그녀가 쓰던 소설 속 미래세계의 중학교에는 아이들을 가두는 지하 감옥소가 있었고, 거기로 가는 비밀통로는 교감 선생님 자리 밑에 있었으며, 친구 중 한 명의 아버지는 대단한 킬러인데 학교 뒤편에는 무시무시한 독버섯이 자라고…….


“출발점도 그랬지만, 지금도 보면 제 소설에는 주인공들이 환상과 현실에 양쪽 발을 걸치고 정체를 숨기면서 살아가는 것들이 많이 나와요. 생각해 보면 제 삶 자체가 그렇네요. 어떤 사람들은 작가라는 정체성만을 갖고 살아가는데, 저는 다른 직업도 있으니까 직장인으로서의 정체성도 있고. 이 두 가지를 잘 혼합을 못 한다는 느낌이 있어요. 현실을 영위하면서 다른 정체성을 유지한다는 게 압력이 상당하잖아요. 제 본질의 자유로움을 현실에서 가두려고 노력해야 하니까, 그 탈출구로 환상을 가지고 오고 싶어하는 것 같아요.”


놀랍게도 그녀의 환상은 작가 자신에게도 유효했다. 이 농도 짙은 환상들은 여전히 작가 자신을 위로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미문의 힘


“다가오는 계절은 나라와 도시마다 다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크게 다르지 않다. 멸종된 존재와 사람의 공백을 채우다 떠나버린 것들이 다르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돌아오는 여름이 다시 여름인 것처럼 돌아오는 사랑도 여전히 가슴이 벅찬 설렘이고, 등을 돌리고 가는 봄이 여전히 봄인 것처럼 떠나는 사랑도 여전히 아른하고 나른한 그리움이다.” ― 「돌아오는 여름이 다시 여름인 것처럼」중


“시멘트로 매끈하게 단장한 학교 뒤편을 본 나는 늙어버린 첫사랑을 만난 사람처럼 우울해졌다.” ― 「노래하는 늪」중


“그저 불꽃 가운데에서 빛나는 소년을, 잃어버린 사랑을 볼 뿐이었다. 그러자 풍경이 하나둘씩 사라져가고, 오로지 사랑했던 남자만이 남았다. 그로써 그 남자는 온 세상이 되었다.” ― 「불의 춤」중


모든 문장을 다 인용할 수 없음이 통탄스럽다. 소설을 읽는 내내 ‘어쩌면 이런 문장을’이라고 생각한 구절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주인공이 가장 격한 감정에 떨어져 있을 때 그녀의 문장은 가장 아름다운 풍경으로 훌쩍 뛰어오른다. 그녀의 문장에는 주인공의 감정에 완전히 동화되기보다는 독자 자신도 어떤 초월자처럼 상황을 관조하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요즘은 문장 고민을 많이 해요. 구한나리 님이 좋아해서 최근에 『혼불』을 읽었는데, 문장을 정말 예쁘게 쓰시더라고요. 이렇게 막 갈아가지고, 쇠에다가 석필 같은 걸로 ‘크아아아아아!’ 이렇게 쓴 느낌이 있어요.”


크아아아아……


“그래, 새겨 넣은. 문장이 읽으면 부드럽고 아름다운 건 알겠는데 읽고 나면 그런 ‘크아아아아아!’ 하고 새겨 넣은 느낌이 있으니까 나중엔 조금 부담스럽기도 하더라고요. 하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문장이 어떤 건지에 대해 많이 느꼈어요. 읽을 때는 아주 부드럽고 매끈하게 읽히고, 표현이라든지 수사가 너무 아름답고. 적어가면서 읽었어요. 시를 좋아해서, 시어라던지 좋은 문장이 있으면 메모해 두기도 해요.”


“좋아하는 시인 있으세요?”


“기형도랑 김수영. 박주택 시인도 좋아하고 최근에는 심보선.”


「슬픔이 없는 15초」이야기를 하다 둘이 함께 탄식을 내뱉었다. 


치욕에 관한 한 세상은 멸망한 지 오래다/ 가끔 슬픔 없이 15초 정도가 지난다/ … / 길들이 사방에서 휘고 있다/ 그림자 거뭇한 길가에 쌓이는 침묵/ 거기서 초 단위로 조용히 늙고 싶다/ 늙어가는 모든 존재는 비가 샌다/ … / 과거가 뒷걸음질치다 아파트 난간 아래로/ 떨어진다 미래도 곧이어 그 뒤를 따른다/ 현재는 다만 꽃의 나날 꽃의 나날은/ 꽃이 피고 지는 시간이어서 슬프다/ … / 이제 막 슬픔 없이 십오 초 정도가 지났다/ 어디로든 발걸음을 옮겨야 하겠으나/ 어디로든 끝간에는 사라지는 길이다 ― 심보선,「슬픔이 없는 15초」중


어느 날, 나의 죽음이 놓이는 날에도 사람들은 쉼 없이 걷고 자동차는 맹렬하게 달리겠지요. 그 날에도 어떤 사람은 화를 내고 어떤 사람은 안도할 거예요. 갑자기 속에서 뜨거운 것이 왈칵 치밀어 올랐어요. 그리고 창밖으로 지나가는 당신을 보았어요. ― 「별들이 빛나는 밤에」중


김주영 작가의 문장을 내가 사랑하는 데에는 김주영 작가가 사랑하는 시인들을 사랑하는 것과도 어느 정도 연관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였다. 우리는 사라지는 길을 향해 걷고 있으며 언젠가 카메라에 죽음을 찍히고야 말 것이며 삶의 어느 순간 선물 같은 문장들이 우리의 가슴 속에 내리꽂힐 것이다. 이 책이 그렇듯이.


차기작에 대해서 묻자 김주영 작가는 눈을 빛내며 전혀 일상적이지도 않고 스케일도 무지막지하게 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인구난을 타개하기 위해 타임슬립을 해서 과거에서 인간들을 끌어오는 굉장한 스케일의 시대극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 인터뷰를 마칠 때쯤에는 분명 이런 굉장한 스케일의 시대극에서도 그녀는 아주 예민한 소멸의 뿌리를 만지작거리고, 우리의 가슴에 있는 자그마한 상처들을 우리가 돌아보게 만들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스페이스 오페라 쓸 거예요.”


“독자들한테 하고 싶은 말은 어떤 게 있으세요?”


“읽고 나서 옆에 소개 많이 해 주세요. 읽고 나서 마음에 짠하게 남는 게 있었으면 좋겠는데.”


반드시 남는다. 그래서 나는 당신에게 이 책을 소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