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 스토커의 1897년 작 『드라큘라Dracula』는 조나단의 ‘동유럽 미식여행’으로 시작된다. 


저녁식사로는 붉은 피망을 곁들인 닭고기를 먹었는데 맛은 훌륭했지만 먹고 나니 목이 탔다. 물었더니 ‘파프리카 핸들’이라고 부르며 전통 음식이어서 카르파티아 산맥 인근에서는 어디를 가든 맛볼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이 당시만 하더라도 그는 맛있는 거 먹고 행복하며 미나(약혼녀)에게 레시피 가져다줘야징~ 나중에 만들어달라 해야징~ 하는 유유자적한 출장남에 불과하다. 물론 나중 가서는 출장남이 아닌 출장음식이 되고…… 재미있는 사실은 『드라큘라』에서 가장 먼저 파프리카를 이용한 닭고기 요리가 나온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점이다. 브람 스토커…… 하, 이 귀신  같은 사람. 아, 지금은 귀신 맞지? 

16세기 오스만 제국이 한창 잘나갈 무렵 인도를 침략하고 가져온 것이 바로 고추였다. 이것을 속국인 헝가리에다 심자 [축하합니다! 고추는 파프리카로 진화했습니다!] OH OH 그것은 진화의 땅 헝가리 OH OH. 그렇게 정착하게 된 파프리카는 우리나라의 고추와 마찬가지로 동유럽 음식 전반에 쓰이는 일상의 식재료가 된다. 덤으로 말하자면 이 당시, 우리는 거북선 만들어서 왜인들을 끔살하던 중이었다. -_-;

이렇게 일상화 테크를 탄 파프리카와 달리, 닭고기가 인류의 싸고 좋은 단백질원이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옛 화가들이 그린 농가의 일상화에서 닭들은 방사되어 길러지는 모습인데, 현대인이 우리에게 그 광경은 서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킬지 몰라도 당시로는 단지 ‘먹이(사료) 부족’으로 인한 방사였을 뿐이다. ‘니 알아서 먹다가 집에 와라이?’ 이거다. 그렇게 유기농(?)으로 자란 닭들은 지금의 닭보다 더 마르고, 하도 싸다녀서 붙은 근육으로 인해 질겼다. 거기다 지들끼리 산 타고 다니면서 눈 맞은 같은 동네 닭끼리의 붕가(근친교배) 때문에 질병에도 약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슬픈 점은, 토종 유럽닭은 품종 자체가 체구가 작은 닭이었다는 점이다……. 이건 뭐 사람은 대용량인데 닭은 샘플이여. 그런 유럽 닭고기계에 큰 변화가 찾아온 것은 바로 대륙…… 아니, 중국닭이 유럽에 선보이게 되면서부터였다. “울히 쌀암 닭 크다해! 체력도 띵호와!” 유럽품종 닭이 호빗이라면 중국닭은 과장 좀 보태 우르크하이급이었다. 그렇게 들어온 중국닭은 유럽품종과 교배를 거쳐 계량되어 유럽 닭시장의 발전을 이룩한다. 그때가 바로 『드라큘라』가 집필되던 19세기의 일이다. 요컨대 조나단은 닭고기의 선진화 웨이브를 타고 있었던 것. 2세기 후, 이 웨이브는 유럽을 넘어 한국의 야식계로 넘어와 눈부신 치네상스를 불러온다. 

소설 내에서 조나단이 먹었던 파프리카 핸들에 들어가는 재료는 굴라쉬와 비슷하나 사워크림이 꼭 들어가고 토마토는 들어가지 않는다. 조리법도 까다롭지 않아서 파프리카 파우더 (대형마트나 외국 식자재 판매하는 마트에 가면 판다)와 사워크림만 있으면 만들 수 있다. 버터를 듬뿍 넣은 냄비에 양파를 볶고, 양파가 갈색을 띠면 같은 냄비에 파프리카 파우더를 듬뿍 묻힌 닭다릿살을 넣고 익힌다. 피망을 함께 넣어도 좋다! 재료가 자작하니 잠길 만큼의 물을 붓고 끓인 뒤, 불을 끄고 사워크림을 넣어준다. 너무 일찍 넣게 되면 단백질 응고로 덩어리가 지니 주의! 혹시나 칼로리가 걱정되는 사람은 사워크림 대신에 단맛이 없는 플레인 요거트를 쓰면 되지만 줄어든 칼로리만큼 맛도 줄어든다. 요리가 완성되면 느긋하게 드라큘라(1992년도작을 추천) 영화를 감상하며 맛을 음미해보자.




타할 陀轄

음식, 공포, 미술, 섹스에 관한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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