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쓰는 동안 나는 꽤 안 좋았다. 꽤 안 좋아서 이만하면 다 산 것 같았고 굳이 더 살아서 귀한 산소를 낭비할 이유도 딱히 없는 것 같았고 어차피 뭘 써도 쓰레기일 뿐인데 이쯤에서 내 생을 포함한 모든 것을 끝내는 게 현명하고 바람직하게 느껴졌다. 

그런 생각에 빠져 있다가 정신이 들었다. “와, 이게 다 무슨 헛소리래.” 그리고 생각했다. “약 먹어야겠구나!” 그래서 상담 선생님 뵙고 약 타 먹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생각을 2년만 일찍 했더라면 그 책은 2년은 빨리 나왔을 것 같다.


앤드류 솔로몬의 저서 『한낮의 우울』에는 이보다 더 우울을 잘 표현할 수 없는 문장이 나온다. 

― 자살은 샤워와 마찬가지로, 너무나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라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지난 2년간 나는 집구석에 자전거를 방치해두었다. 바퀴에 바람이 빠졌는데 그걸 넣는 것이 귀찮다고 먼 거리를 걸어 다녔다. 새해에 펌프를 꺼내 바람을 넣으며, 귀찮았던 것이 아니라 할 수 없었다는 것을 인정했다. 바꿔 말하면 나는 그런 것을 인정할 수 있을 만큼 괜찮아졌다. 나는 지금 식사 준비에 시간을 들이고 집 안을 정리하거나 이불을 빨아 말리는 것에 시간을 들인다. 나는 2년간 그런 일에 시간을 들이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그게 귀찮았거나 내가 게을렀던 것이 아니라 할 여력이 없었다는 것을 인정한다. 말하자면 나는 생을 유지하는 데만도 에너지를 다 써서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우울이 떠난 뒤에야 비로소 그것이 내 인격과 사고방식과 세상에 대한 이해와 생활 전반을 얼마나 다른 것으로 만들었던가를 경이로운 심정으로 회고한다. 그것이 얼마나 오랫동안 내게 붙어 있었으며 자라나고 줄어들 때마다 내게 어떤 형태로 작용했는지도. 겨우 반년 전의 일인데 당시의 나와 지금의 나를 연결 짓기가 쉽지가 않다.


오 분만 생각하면 자살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딱히 도움이 안 되는 조언이다. 죽을 에너지 정도만 남은 제법 건강한 우울 단계가 있는데, 그때에는 오 분에 한 번씩 죽음이 찾아들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오 분에 한 번씩 덮쳐오는 사신과 싸워 이겨야 한다. 매일 밤 악마 떼가 찾아와 쉬지 않고 싸워야 하는 『베르세르크』의 가츠의 삶이나 다를 바가 없다. 사람이란 얼마나 강인한 생물인지, 놀랍게도 그런 상황에서도 사람이 생을 유지한다. 우울증을 겪는 사람은 모두 투사며 전사다. 그러니 그들이 죽음에 발을 헛디뎠다 한들 무슨 다른 해석을 붙일 것인가? 폭격이 쏟아지는 전쟁터에서 죽은 사람더러 이렇게 저렇게 하면 살 수 있었을 텐데 하는 말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생이 이어지는 것은 의지보다는 우연에 가깝다. 우울은 암이나 독감과 같아 사람을 가리지 않고 와서는 무작위로 사람을 살리거나 죽인다.

 

우리 피망 밭에도 때로 병이 온다. 열심히 돌보지만 그래도 올 때가 있다. 그때마다 이유를 따지자면 따질 수 있지만 꼭 그 때문은 아니다. 똑같이 다루는데 오지 않을 때도 있으니까. 병은 삶에서 오고 간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자연스럽지 않은 일이 있다면 치료하지 않는 것인데, 그때에는 그런 생각이 안 들었다.

지금도 내가 약을 먹기로 결정했던 때를 떠올린다. 나는 그때 일생 천식으로 고생하다가 처음 약을 먹은 사람 같았고, 평생 비염으로 고생하다가 처음 알레르기 약을 먹은 사람과 비슷했다. 내 정신은 강했고, 쉽게 회복할 수 있었고 아주 약간의 도움만을 필요로 했는데, 나는 그 간단한 요구를 반평생 방치했다. 지금은 왜 그랬는지 알 수가 없다. 

이것은 내가 살아가면서 겪게 될, ‘돌이켜보면 왜 그랬는지 알 수가 없는’ 많은 것들에 포함될 것이다. 언젠가 아이들이 우리들에게 ‘그렇게 힘들었다면서 왜 내버려두었어요?’ 하고 질문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혼란스러운 심정으로(많은 어른들이 지금 우리가 하는 많은 질문에 그리하듯이) ‘그냥 그때엔 그런 생각이 안 들었어.’ 하면서 논리 없는 변명을 할 것이다.






김보영

소설가.

단편집 『멀리 가는 이야기』 『진화신화』와 장편소설 『7인의 집행관』을 출간했다.

현재 강원도에서 가족과 함께 피망과 아삭이고추를 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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