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또라이 소년이 사랑스러운 이유에 대해





그를 만나러 가는 길, 나는 질문지를 확인할 겸 다시 한 번 소설들을 되짚어 읽다가 버스 안에서 끅끅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상황이 이 정도까지 진행된 와중에도 삼촌은 짧은 휴식시간을 갖겠다며 감시 카메라가 보여주는 서울의 광경을 재차 확인하며 이 도시를 지배하고 있는 김꽃비들의 자태를 감상했다. 광화문 광장을 점거한 김꽃비들. 한강 다리를 메운 김꽃비들. 동부고속도로를 달리는 김꽃비들. 홍대 맛집에 줄 선 김꽃비들. 서울 곳곳에서 김꽃비를 볼 수 있었고 삼촌은 그 광경을 하나하나 눈에 새겨넣겠다는 듯 황홀하게 지켜보았다. 아 화상아. 아 미친놈아. 

― 「일천만 김꽃비가 세종로를 정복했을 때」중


작중의 ‘상황’이란, 작중의 ‘삼촌’에 의해 모든 서울시민이 배우 김꽃비 -

(http://ko.wikipedia.org/wiki/%EA%B9%80%EA%BD%83%EB%B9%84 여기까지 들어와서 이 작가의 인터뷰를 읽고 있는 당신이라면 설마 이 배우를 모를 리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혹시나 하는 노파심에 링크를 달아본다.)

가 되어버린 말도 안 되는 상황이다. 그 상황에서조차 김꽃비에 대한 열렬한 팬심에 불타오르며 황홀하게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는 삼촌을 향해 조카는 “아 화상아. 아 미친놈아” 라고 중얼거린다. ‘아’ 뒤에 말을 끊는 쉼표가 들어가지 않았다는 게 내 폭소를 이끌어낸 핵심적인 요소였다. 이것은 그 자체로 너무 자연스러운 입말이었다. 조카는 삼촌을 향해 분노할 힘도 잃어버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뱉는다. 그 ‘기가 막힌’ 에너지는 삼촌을 말리지는 못하지만 이 소설집 전체를 신명나게 끌고 간다.



인터뷰 장소는 우동집이었다. 약속 장소에 조금 늦게 도착한 나는 우동을 먹어치우고 나서 맥주를 한 잔 시켰고, 그는 컵케이크를 꺼냈다. 그는 자신을 통제할 수 없어지는 게 싫어서, 술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허, 참. 그러면 이 미친 소설들은 통제를 하면서 썼다는 거 아닙니까?


“또라이처럼 보이려고 소설을 썼는데, 평범하다는 얘기 들으면 좀 상처받겠죠. 그렇지 않을까? 나는 ‘와 이거 되게 재밌지 않아, 또라이같지 않아?’ 라고 생각한 건데.”



그의 말에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dcdc님 소설이 재밌는데, 어떤 사람은 취향을 타서 재미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또라이 같지 않다고 말할 사람은 없어요. 확신할 수 있어.”


누가 읽어도 또라이 같은 소설에 대하여, 성공적으로 자신을 통제해 온 여기 이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어쩌다 이렇게 되셨어요


인터뷰를 시작하자마자 처음으로 했던 질문이었다. 그의 소설 소재들은 하나같이 제정신이 아닌 내용뿐이고 소설의 진행과정도 마찬가지라서,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만 밝혀도 이건 좋은 인터뷰가 되겠다는 생각이었다. 질문을 맞닥뜨리자 그는 당혹스러워했다. 그러게, 너무 큰 질문이었던 것 같아서 부연설명을 하려고 한 것이,


“이런 소재를 쓸 수는 있다고 생각해요. 큰 의미에서는 있을 수 있는 소재들이죠. 소설이라는 게 본질적으로는 사소한 것들에 착목하는 이야기니까. 그런데 그런 것치고는 소설이 너무…… 수치를 몰라요.”


“아, 그건 성격이 그래요. 전 원래 수치를 몰라요. 제가 얼마 전에 별자리 점을 봤는데.”


“나도 염소자린데 난 안 그래요.”


“……점 쳐준 사람이 나보고 똘끼 있는 여자랑 연애할 거라고 했어.”


“그건 점 안 봐도 알 수 있을 거 같은데.”


“……”



그의 유년시절에 뭔가 엄청난 충격이라도 있었던 건 아닐까 한참을 캐내어 보았지만 도통 알 수 있는 건 없었다. 오히려 유년시절부터 자꾸 또라이 같은 행동을 했다는 고백 정도만 들을 수 있을 뿐이었다. 사실 맥주를 마시는 내 앞에 앉아서 컵케이크를 먹는 이 남자는 전혀 또라이 같아 보이지 않는다. 셔츠를 입고, 안경을 쓰고, 모자를 쓰고 있다. 어느 쪽이냐고 묻는다면 매우 순하고 얌전한 인상이다. 나는 책을 후루룩 넘겨보았다.


대통령 항문이 똥을 안 싸고 말을 하는 이야기, 뽁뽁이 속의 외계문명이 인류에게 말을 걸어오는 이야기, 지구를 음모(陰毛)가 뒤덮는 이야기, 세상 모든 것들이 게임 괴혼(남코의 플레이스테이션용 액션 게임. 주변의 물건들을 ‘덩어리’에 붙여서 크게 만드는 게임이다.)

의 덩어리처럼 하나로 합쳐지는 이야기, 김꽃비가 일천만 명이 되어서 우주로 날아가는 이야기, 화장실에 몇 날 며칠 동안 갇히는 이야기, 얼굴이 좆이 되어버린 남자의 이야기…….


그는 입술을 삐죽거리거나 헤실헤실 웃는다. 나는 얼마 전 그의 캐리커쳐가 그려진 티셔츠를 거금 7천 원을 주고 구매했는데, 캐리커쳐 속의 그는 아기사슴으로 묘사되어 있다. 워낙에 여리고 곱게 생긴 인상이라 그의 주변에는 ‘아기사슴보호위원회’라는 위원회가 활동하고 있을 지경이다(는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도 그 위원회의 일원이다)!


그리고 책을 들여다보는데,


아 진짜 어쩌다 이렇게 되셨어요.







정치적인 작가


그는 생각보다 상당히 정치한(!) 소설들을 많이 쓰는 작가다. 일단 표제조차도 『대통령 항문에 사보타지』가 아닌가. 많은 경우 정치소설이란 리얼리즘에 기반하고 있다. 이를테면 우리가 흔히 떠올릴 수 있는 방현석이나 황석영의 소설들이 그렇듯이. 혹은 세계관을 통해 흥미로운 비유를 보여주는 경우도 있다. 조지 오웰의 1984를 떠올려 볼 수 있겠다. 그러나 dcdc의 경우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다. 정치한 소설을 쓰는 작가치고는, 그의 소설은 메타포가 메타포라고 할 것도 없이 간명한 경우가 많다. 굳이 어렵게 몇 겹씩 장치를 만들어서 정치성을 숨기려고 하지도 않고 현실에 대한 비유를 흐리지도 않는다. 그것이 세련된 것이라고는 더더욱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왜 멀쩡한 항문은 냅두고 입으로 똥을 싸느냐? 이는 항문에 대한 사보타지다.”

“항문이 똥을 싸는 존재인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입은 다르다. 입이 밥을 먹거나 물을 마시기도 하는 데 쓰는 존재라서만은 아니다. 입은 말을 하는 곳이다. 말은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것이다. 말을 하는 것이 바로 사람을 사람으로서 자리 잡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은 이를 의도적으로 방기했다. 그가 하는 것은 말이 아니다. 똥이다. 앞뒤가 맞고 모순이 없어야 말인데 대통령은 그렇지가 않다. 그런 말은 말이 아니라 똥이다.”

“그렇다. 대통령은 입으로 똥을 싼다.”

―「대통령 항문에 사보타지」중


비유는 비유라고 할 것도 없이 단순하고 언어는 그대로 상황이 되었다. 그러나 그 상황이 너무도 아연한 것이라 읽는 사람은 웃을 수밖에 없다. 도무지 일어날 수도 없는 일이고, 상상하는 것조차도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 소설이란 ‘있을 법한 일’을 쓰는 것이라고 흔히들 이야기하지만 이 경우에는 도무지 이 상황을 현실로 받아들일 수가 없기 때문에 새어나오는 웃음이다. 도무지 현실이 될 수 없을 것 같이 ‘웃기는’ 이야기들이 이 소설집 속에 있다.



“제가 2007년에 열심히 운동권으로서 참여를 했었어요. 그 다음에 조직 안에서 싸우고서 뛰쳐나왔죠. 더 이상 못해먹겠다고. 2008년 촛불집회 때는 나름의 방식으로 도우면서 열심히 나갔어요. 오랫동안 죄책감으로 남아 있었던 것 같아요, 운동권을 그만뒀던 게. 요즘도 6개월에 한 번 정도는 악몽을 꾸는 것 같아요. 그때 저랑 싸웠던 사람들이 나와서 ‘너는 비겁한 애일 뿐’이라고 욕하고, 저는 ‘나는 나대로 이런 걸 하고 있을 뿐’이라고 반론을 하고. 콤플렉스가 있는 거죠.”


운동이든 무엇이든 무언가 영향력을 미치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조직’의 형태를 띠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조직은 개인과 다른 조직 내부의 논리가 결국엔 발생하게 마련이다.


“너희들처럼 이렇게 조직에 함몰되어서 주변 사람들 보지 않고 깽판을 치느니, 나는 내 주변 사람들 챙기면서도 어떻게든 해 낼 거야. 그런 생각을 했어요.”


어쨌든 그는 지금 ‘조직 운동권’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리고 글을 통해서 어떤 방식으로든 세상을 바꾸는 작업을 해 보려고 한 모양이었다. 그의 글은 분명 어느 방향으로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에너지가 있어 보였다.


“북개는 왜 그러오? 그대 사제들이 희망승합차希望乘合車를 준비하여도 돕지 않고 저잣거리에 리불만 남기고 앉았으니.”

……원 별호가 북개였는데 그 뜻은 바로 북한산 개새끼를 줄여 부름이라. 이 치는 반자복공反資復共을 주창하는 결사에 소속된 인물로 운동권의 고수로 널리 알려졌다. 운동권은 비결을 통한 수련만큼이나 실전을 통한 무공 연마를 중시하는데 북개도 한때는 곳곳의 항전에 사수대死守隊로 참가하여 그 명망을 드높인바 있었으니. 그러나 이제는 지쳤는가 사제되는 신진고수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가타부타 잔소리만 해댔다.

― 「사조백수전」중


그는 개인을 향하는 시선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이 빈정댐일 때도 있고 좌절일 때도 있고 다정함일 때도 있겠으나. 정치적인 문학을 한다는 것은 조지 오웰의 표현대로 정치적인 상황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 속의 인간에 집중하는 것이다. 침몰하는 배 위에 있을 때 우리는 그 배의 상황에 집중하지 않을 수 없다. 동시에 작가란 그 배 안에서 아우성치는 인간들을 바라본다.


노골적인 비유 속에서도 그가 끈질기게 따라붙고 있는 것이 상황보다는 사람이라는 건 매우 흥미로운 지점이었다.




그는 좀비를 연상시키는 소설들을 많이 쓴다. 「일천만 김꽃비가 세종로를 정복했을 때」가 그렇고. 「돼지 좀비 바이러스」는 노골적으로 좀비에 대한 이야기이며, 「201X 뽁뽁이 대량학살사건에 대한 보고서」는 비슷하게 복제되는 수많은 생명들이라는 맥락에서 여전히 좀비를 연상시킨다. 「마이클 잭슨 사랑해요 고마워요」에서는 마이클 잭슨까지 좀비로 만들어버리는 기염을 토한다.

좀비물은 전형적으로 정치적인 소재다. 처음 좀비물이 등장했을 때도 정치적 해석이 쉽사리 적용될 수 있었고, 아직까지도 대중·노동계급·우민을 대표하는 환상적 이미지로 활용된다. 다만 dcdc의 경우는 전형성과 일반성을 추출하기에 상당히 어려움이 따른다. 이들은 인간을 공격하지도 않고 인간과 연대하지도 않고 대체로는 어처구니없이 거대해지고 만다.


“dcdc님 소설에서 보면 자꾸 어처구니없는 결말을 내잖아요. 괴혼처럼 한 덩어리로 합쳐진다거나(「하나가 둘이다」), 방사능의 충격으로 거대 괴수가 된다거나(「김꽃비가 세종로를 정복했을 때」)그런 것들 나오잖아요. 여러 개체들이 합쳐져서 거대해지거나 그런 상상력.”


인간에 집중하는 이 작가는 대중의 힘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예민한 지점을 그런 상상력 속에서 포착해 냈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 생각이 과히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작가님은,




연애를 못 해서 그래 : 어린아이의 문학


“그쵸, 그게 내가 다 연애를 못 해서 그래.”


“응? 무슨 말이예요?”


“다 연애하고 싶어서 연애하려고 찌질대다가 망하는 애들이잖아요.”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가에 대한 새로운 실마리가 발생하였다. 연애를 못 해서라니!


“제가 좀비물을 많이 쓰잖아요. 「마이클 잭슨 고마워요 사랑해요」도 좀비를 염두에 두고 썼고, 「일천만 김꽃비가 세종로를 정복했을 때」도 좀비물이고. 그게 다 섹스의 좌절이에요.”


WTF?


“난 되게 노골적인 암시라고 생각했는데?”




아, 그렇구나. 섹스를 할 때 인간이 느끼는 감정이라는 것은 단순히 쾌감이 아니다. 타자와 내가 그 순간에는 하나가 되어 있다는 환각 같은 것이 오히려 쾌감보다 훨씬 중요하다. 쾌감은 부산물로 딸려오는 것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타자와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이를테면 환각이자 망상이겠으나, 그런 환각조차 좌절된 사람에게는..


“망상이 굴절되는 거죠.”


그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어른이 되지 않는다. 모든 소설이 성장소설이라는 말은 그의 소설에서는 통용되지 않는다. 「하나가 둘이다」의 경우 어딜 봐도 동화의 생김새를 취하고 있는데도 주인공인 ‘하나’는 성장하기는커녕 자신의 굴절된 욕망에 패배해서 세계를 집어삼키는 퇴행적 선택을 한다. 좀 더 유쾌하지만 「김꽃비가 세종로를 정복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김꽃비가 세종로를 정복했을 때」같은 경우에는 삼촌인 홍정남이 그다지 어른이 된 거 같지는 않아요. 그냥 계속 그대로 만족하면서 끝나버렸어. 서울 시민도 다 없어졌는데.”


“그쵸, 다 어른이 못 되고 좌절해서. 연애를 못 한 게 커.”


“아기사슴보호위원회 계 부을까요.”


“계?”


“러브플러스. (코나미에서 제작한 닌텐도용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이다. 일반적인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은 주인공과 연인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리는 데에 비해서 연인이 되고 나서의 일반적인 일상이 계속되는 구성이다.)


“……사 주세요.”



「김꽃비가 세종로를 정복했을 때」는 특히나 매력적인 소설이다. 심지어 김보영 작가는 추천사에서 ‘조금 더 활기와 생명력이 넘쳐나고 약간 더 능청스럽고 정열적이고 집요하다’ 라고 묘사한다. 김보영 작가는 이것을 ‘사랑의 힘’이라고 말했지만, dcdc 자신은 ‘연애 부재의 힘’이라고 말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 작품집 내부에는 노골적으로 dcdc 자신을 투영한 캐릭터들이 왕왕 등장하는데, 「김꽃비가 세종로를 정복했을 때」의 두 주인공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른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연애에 대한’, 혹은 ‘인간 이해에 대한 욕망이 좌절된’ 삼촌 홍정남과 그런 삼촌을 혀를 끌끌 차며 바라보는 냉소적인 조카. 통제를 잘 하는 작가 dcdc는 자신의 좌절된 욕망조차도 완벽하게 통제해서 글 속에 옮겨두었다.


“김꽃비는 그런 내용이라고 생각해요. 연애를 하고 싶은데 결국 못 하잖아요. 삼촌이 해야 할 일은 하나밖에 없었다면서 영화를 만들잖아요. 그냥 실연하는 사람의 일련의 과정인 것 같아요. 고백하고, 차이고, 감정을 예술로 승화시키고. 그게 이 책 전체 같아요.”


“「하나가 둘이다」는 난 정말 불쾌했어.”


“나는 동화를 쓰려고 했는데. 『몽실언니』같은 것보다는 내 소설이 더 건전하지 않아?”


“『몽실언니』는 우울해도 카타르시스가 있는데, 「하나가 둘이다」는 배출구가 하나도 없잖아. 오히려 응어리가 생겨요…….”


“나는 원래 결말을 바꾸려고 했어요. 조금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잘 안 되더라고…….”


“우리는 하나가 아니구나.

두리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나는 아무 대꾸없이 두리를 안아줬다. 두리의 땀에서는 아몬드 냄새가 난다. 달착지근하면서도 힘찬 냄새. 나도 이랬던 날이 있었을까. 두리의 머리에 코를 박았다. 두리도 나를 꼭 껴안는다. 두리를 감싸 안는다. 아메바가 먹이를 식포로 감싸듯이, 위족으로 미생물을 감싸듯이. 식세포 운동으로 아메바와 먹이가 하나가 되듯이.

“두리야. 하나가 되자.”

두리가 끈적하게 녹아 붙는다. 먹다 뱉은 엿가락처럼 그렇게 하나가 된다. 아빠와 엄마는 우리의 모습을 보더니 비명을 지른다. 

―「하나가 둘이다」중


……이혼을 대비해서 애 이름을 하나라고 지어선 안 될 것 같다. 


어른이 되기는커녕 하나는 어른이 되기를 거부하고 퇴행한다. ‘아메바’ ‘미생물’ 같은 단어들을 사용하며 작가는 퇴행이라는 것을 명백하게 문장에 드러내 주었다. 일반적인 의미의 카타르시스는 이 소설 내부에서 찾을 수 없다. 어른이 되기를 포기하거나 완전히 좌절된 자의 절망, 그리고 그 절망이 단순히 절망으로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자기 자신에 대한 냉소를 통해 ‘웃픈’ 유머로 끌어올려진다. 문제는 ‘웃픈’ 게 너무 웃기다는 거다.




냉소적이고 뻔뻔하지만 스마트하고 착한 남자의 소설을 성장시켜 줄 여성분 구합니다



“A라는 인물이 있고, B라는 인물이 있고, A와 B 사이에 C가 있을 때 어떤 갈등상황이 벌어지고…… 보통은 이런 식으로 소설을 구상하잖아요. 전 그걸 못 하는 것 같아요. 대신 굉장히 웃긴 상상을 하나 해요. 대통령의 항문이 어느 날 말을 하기 시작했어. 그러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그리고 일어날 거라고 예상되는 장면들을 다 정리를 해 놓아요. 그리고 장면들을 유기적으로 배치하고 소설을 쓰기 시작해요.”


어라.


“그런 거치고는 인물들 사이에 디테일이 너무 좋은데.”


분명 이 소설들은 미친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개연은 매우 탄탄하다. 놀라운 재능이라고 생각했다. 


“제가 잔머리가 좋은 것 같아요.”


대통령 항문이 말을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서울시민이 모두 김꽃비로 변하는 것도, 얼굴이 좆으로 변하는 것도.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쓰면서도 이 이야기에 빨려 들어가게 만든다는 것은 디테일의 힘이다.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를 쓰면서도 이야기의 짜임새가 훌륭하면 읽는 사람은 그 이야기를 신뢰하고야 만다. 이입하고 따라 들어간다. 이 꼼꼼하고 머리 좋은 작가는 그 점을 아주 잘 알고 있는 듯했다.




“홍정남은, 홍은 제 성에서 따 왔고. 정남은…… 김정남.”


“그럴 줄 알았어.”


“그리고 동정남.”


“뭐?”


“오타쿠인 독재자 같은 느낌으로.”


이것 뿐만이 아니다.


“「안에 사람 있어요」는 앞에 붙은 숫자가 이 사람이 의식을 잃었던 횟수예요. 그래서 그 숫자가 심하게 널뛰기를 해요. 가운데를 생략했다기보다는 이야기의 템포조절? 다운로드 받을 때 뜨는 퍼센테이지같은 감각을 주려고 했어요.”


“「돼지 좀비 바이러스」는 반전을 배치하려고 이야기를 거꾸로 썼어요.”



「사조백수전」은 내가 본 패러디 소설 중 손에 꼽을만큼 계산이 잘 되어 있는 소설이었다. 동사서독남제북개 뿐만 아니라 마지막에 나타나는 왕중양까지! 진숙 대협, 화우낭자, 폭풍설사, 수타 등의 단어들도 어쩌면 저렇게 적절하게 한자를 매치했을까 감탄을 금치 못했다.


 dcdc의 작품 쓰는 스타일이란 흥이 아니라 논리였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그럴 수 없이 논리적으로 써 내려간 것이다. 뻔뻔하기 그지없다.우뇌형 인간인 나는 그저 감탄하며 섬세한 계산들을 듣고 있을 따름이었다. 뭐 하나도 그냥 배치해 놓은 게 없었다.





차기작에 대해서 묻자 또 미친 대답이 돌아왔다.


코스믹 호러라고 하잖아요. 우주적인 존재가 공포스럽게 지배하는 거. 그걸 바꿔서 코스믹 에로스를 쓸 거예요. 거대한 아메바 생명체가 이웃 항성을 감싸 안는데 알고 보니까 그게 섹스고 별을 잉태하는 과정인 거야.”


우주,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라고 하자 그는 


“제 소설은 안 보셔도 김꽃비 배우님의 영화는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독자는 책을 산 사람들이예요.”


“아, 그렇구나. 그럼 제 소설도 사셨으니까 김꽃비 배우님의 영화를 보시면 작품을 더 잘 이해하시게 되리라고 믿습니다. 꼭 추천합니다.”




사실 나는 이 인터뷰를 쓰면서 그가 굉장히 매력적이고 연애할만한 사람이라는 공개 추천장이라도 쓰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막상 다 쓰고 나니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인터뷰 중 우리가 나누었던 대화를 옮겨둔다.


“나 나름으로 내면 고백을 하는 거예요. 연애 못 하니까 이런 소설 썼다고. 엄청난 용기 없이는 할 수 없는 고백이야. 별자리 점을 보러 갔는데 연애운이 되게 나쁘대. 그냥 원래 나쁘대. 난 연애해도 잘 안 될 거고 원래 잘 안 되고 해도 재미없을 거래.”


풀이 죽은 표정으로 중얼거리던 그가 갑자기 밝은 표정으로 얼굴을 들었다.


“대신 부인운이, 부인운이 좋대! ……그것만이 희망이야.”


“너무 점을 신뢰하지 마. 왜 지금 미신 유물론자가 되어 있죠?”


“왜냐면요, 내 인생에 있어서 연애를 할 수 있다고 해 주는 사람은 걔네밖에 없어…….”


“아까 내가 디테일이 좋다 그랬잖아요. 내가 보기엔 소설에서 디테일이 훌륭하다는 건 그 작가가 인간에 대해서 얼마나 이해하고 있느냐를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내가 보기엔 dcdc님은 인간에 대한 이해가 훌륭해요. 그런 사람은 연애를 잘 할 수 있어요.





인간에 대해 이해하지 못해서 고통스러워하는 주인공, 성장하지 못한 자신을 사랑하고 성장하지 못한 당신들도 사랑하는 주인공, 그리고 조금씩 문을 열어보려고 애를 쓰는 주인공들이 이 소설에는 있다. 그는 아마 연애도 잘 할 거고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도 충분하다. 그러니 우리는 그가 추천하는 김꽃비의 베스트 영화 《삼거리 극장》이나 보면서 그의 성장을 기다리면 될 듯하다. 일단은 이 재미있고 또라이 같은데다가 너무 사랑스러운 한 권의 책을 옆에 두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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