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문학에 큰 획을 그었던 감나무도…… 아니 이영도 작가의 데뷔작 『드래곤 라자』의 1권에는, 밤중에 칼의 집을 방문한 제미니와 후치에게 칼이 잘 익은 사과주를 선물하고 그 사과주를 꼴딱꼴딱 마시다가 꽐라가 된 제미니가 나무에 기어 올라가려고 애를 쓰는 감성 돋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을 읽고 필자는 다른 것보다, 대체 이놈의 사과주 맛이 어떤 것인지 정말이지 궁금했다. ‘아마 사과주스 같지 않을까?’ 당시에는 맥주는 맥콜 맛이 나고, 와인은 포도주스 맛이 날 거라 믿을 정도로 순수했던 터라 제미니가 그렇게 맛있게 먹은 사과주 맛이 궁금해 내가 몸이 달아 발효되어 버릴 것 같았다. 그러나 내 나이2x, 처음으로 마셔본 사과주는 달고 ‘떫고 독했다’. 빈 잔을 부여잡고 오열. 그렇게 나의 마법의 가을은 끝이 났다. 뻐킹 드래곤 라자.

성경에서는 선악과로, 그리스-로마 신화에서는 황금사과로, 아일랜드 신화에서는 영생의 과일로. 사과는 유혹과 타락의 상징인 동시에 신비로움과 현명함의 상징으로 나타났다. 어디서든 잘 자라는 특성 덕분에 전 세계로 널리 퍼져 각기 다른 많은 신화/문화/예술에서 쉽게 흔적을 찾아볼 수도 있고. 그야말로 사과노 어디서든와 튼튼데스네. (오 시발 쩐다데슼ㅋㅋㅋ) 인류가 우가우가거리며 매머드 때려잡아 먹고, 굴에서 갱뱅 벌이던 시절에도 야생능금을 먹었다고 하니 역사도 오래되었다.

제미니가 마신 사과주의 기본 베이스가 되는 애플사이다는 사과즙을 짜내 발효를 시킨 아주 도수가 약한 술이며, 우리가 아는 그 칠X사이다와는 궤를 달리한다. 단맛이 강한 후식용 사과로는 사과주를 만들지 않는데, 그런 사과를 쓰면 맛도 없고 장기간 보관하고자 하는 본연의 목적과 달리 빨리 상하기 때문이다. 사과주 만들었다가 어느 날 예고장도 날리지 않은 괴도 천사가공품 사과주가 폭발하는 장관을 보고 싶다면 다디단 사과를 쓸 것. ‘주님, 오늘도 불쌍한 농부들을 깜놀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이러한 이유들로, 사과주용 사과는 탄닌+산도+당도, 이 세 가지 조합이 높은 종을 사용한다. 당이 사과를 발기차게 발효시키면 탄닌과 산이 과발효를 막으면서 액을 맑게 만드는 역할을 맡는다. 일반적으로 애플사이다의 색은 후효소와 산소의 결합 그리고 사과 안의 팩틴과 단백질이 빛으로 메이크업★ 하여 갈색 빛을 띠지만, 소설에서 나온 것과 같이 독한 사과주는 애플사이다를 증류시켜 만든 술이고 그 증류 과정에서 갈변요소들은 끔ㅋ살ㅋ당하게 되므로 맑은 금빛의 증류주가 탄생하는 것이다.

이렇게 두 번 증류하여 나온 것이 블랑슈, 이것을 참나무통에서 숙성시키면칼바도스가 된다. 이 독한 증류주는 옛적부터 소화를 돕는 약용주로도 널리 쓰였다. 맛도 있고, 저장식품도 되고 약용으로도 쓰였던 사과주의 가장 큰 문제는 증류하기 위해서는 증류기계를 소유하고 있는 귀족에게 굽실거리면서 사용료를 바쳐가면서 써야 한다는 건데, 후치네 동네, 아니 마을 영주님이 호구라서 그런지 아니면 칼이 존잘이어서 그런지 잘 알 수 없으나 남들은 세금으로 낼 만큼 귀한 (9세기 이후 귀족과 왕실의 세금으로 사과주가 바쳐졌다) 사과주를 집에 보관해두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들에게 퍼준다는 거렷다. 이 장면을 읽으며 허허, 오늘도 판타지 세계는 평화롭군요라며 엄마미소를 짓는 것도 잠시. 바로 직후에 마을 사람들은 계곡에서 드래곤에게 피떡이 된다. 지못미.

애플사이다 정도는 집에서 간단히 만들 수 있겠지만 주류법 위반으로 YTN에 나오고 싶지 않다면 그냥 사서 먹는 편이 좋다. 프랑스산 애플사이다나 독일산 사과와인, 혹은 영국과 아일랜드산 독한 사과주도 괜찮다. 이태원이나 수입물품 취급점을 뒤져보면 무알콜 애플사이다도 있으니 시원하게 만들어서 벌컥벌컥 마셔보기로 하자. 마치 미美대륙의 소작농이 된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각 다른 종류의 사과주마다 다른 풍미가 있으니 그것을 음미하며 맛의 변화를 하나하나 만끽하자.




타할 陀轄

음식, 공포, 미술, 섹스에 관한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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