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딱한 상자 속에 양 한 마리
나는 이 인터뷰를 정리하는 데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원고를 정리하려고 할 때마다 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야기를 출발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손지상 작가의 소설은 흥미로운 부분들이 상당히 있었지만, 막상 인터뷰를 하고 나자 손지상 작가에 대해서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1도 알 수가 없었다. 내가 듣기에 그의 말은 ‘나는 A입니다’ 라고 말하다가 2초도 지나지 않아 ‘나는 B입니다’ 라고 말을 하는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했고. 그게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위해서 녹취록을 다시 돌려 듣고 다시 돌려 듣기를 반복해야 했다.
나는 여전히 내가 이 작가와 소설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고 이 글을 쓰는지에 대해서 확신이 없다. 하지만 소설이라는 것은 작가의 의도만을 반영하는 것도 아니고 세상의 생김새만을 반영하는 것도 아니고 훨씬 더 뭉뚱그려진 기이한 양태(이야기)로 말하기 어려운 ‘무엇’을 보여주는 것이니 나의 이해와 상관없이 이 인터뷰 기사는 흥미로울 수 있을 것이다.
하드보일드 hard-boiled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또는 감정에 좌우되지 않는 냉담한 태도. 폭력적인 주제들을 감정 없이 냉담하게 그려내는 작품들을 일컫는 말로 레이먼드 챈들러 ‧ 리처드 마스테인 등이 대표적인 작가라고 볼 수 있다.
나는 『데스매치로 속죄하라』를 읽고 곧바로 이 소설은 하드보일드라고 생각했다. 이상했다. 이 소설은 하드보일드의 일반적인 특징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다. 작가의 태도는 비정하기는커녕 극명하게 주인공의 감정을 드러내고(심지어 그 감정은 아주 정념적이다), 주인공이 그 행동에 이르기까지의 심리묘사는 촘촘하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의문이었다. 나는 대체 왜 이 소설을 하드보일드라고 생각했단 말인가.
“저는 항상 기능에만 관심이 있어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손지상 작가는 갑자기 패션이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려주는 기능을 하고 있다느니, 자신은 사실 폭력을 싫어한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쭉 늘어놓는 바람에 잠깐 나를 멍하게 만들었다.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하던 와중에 원래 이야기로 간신히 돌아왔다.
“괴담은 현실도 아니고, 완전히 망상이나 가상도 아닌데,
분명히 모순이 존재하는데 이게 애매모호한 형태로 있다는 것 자체가 - 제가 매료되는 부분인 것 같아요.”
맞다. 한참 돌아 돌아서 내가 처음 했던 질문을 간신히 다시 떠올렸다. 내가 처음 했던 질문은 이 소설집의 많은 이야기가 괴담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여고생 고기」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음침한 곳에서 인육이 거래되는 이야기고, 「인어의 유혹」은 세계의 어딘가에는 인어가 되는 사람들이 있다는, 인어가 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수도 있다는 설정을 전제로 하고 있다.
“저는 이야기의 기능은 교육을 목적으로 시작된 거라고 생각을 해요. 하지만 교육이라는 건 달리 말하면 세뇌랑 크게 다르지 않은 거죠. 저는 이야기의 기능이 현실에 있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기 위한, 혹은 현실을 비판하기 위한 것으로는 그다지 적합하지 않은 매체라고 생각해요. 저는 소설을 원래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제가 심리학과를 다녔거든요. 어느 날 학교 선배가 저한테 인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면서 소설을 읽어보라고 해서, 처음 읽다 보니 뭘 읽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당시에 공익근무요원으로 천안에 있었기 때문에 천안의 헌책방에서 처음 소설을 읽기 시작했어요. 동서 추리 문고.”
여러분, 저는 지금 그의 이야기 라인을 그대로 서술하였습니다. 분명 이야기의 기능으로 대화를 시작했는데 갑자기 자신의 소설 독서 경험으로 부지불식간에 나아가버렸다. 대체 나는 어디에서부터 그의 이야기 줄기를 놓쳐버려서 이 언어의 도가니탕에 떨어져 있는가. 내가 이 인터뷰 원고를 정리하는 데에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는 사실에 여러분이 공감해주기를 바란다……. 여하튼 그의 소설 경험 얘기를 계속 듣자면
“전집 같은 것을 쭉 읽다가 보니까 나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니까 사실 입장이라던가 소설로 뭘 표현해야겠다던가 이런 욕구가 굉장히 늦게 생긴 사람이라. 소설로서 뭘 할 수 있는가, 소설에 뭘 담아야 하는가보다 소설 그 자체가 어떤 기능으로 움직이느냐에 더 관심이 있었던 거죠.”
이상한 하드보일드라는 느낌을 받았던 것은 여기에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그의 소설 속에 나오는 사람들은 하드한 상황에 휩쓸리고 있으며 그 안에서 비정상적일 정도로 격렬한 감정에 휩싸여 있다. 그의 소설 대부분은 1인칭 시점에서 쓰였으며, 화자는 문장에서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토해낸다.
그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그가 그동안 잊고 지냈고, 그러면서도 언제나 바라왔던 바로 그것이, 그의 마음속을 채웠다.
―내가 우월하다.
―내가 지배한다.
「그녀와 애국청년의 원데이 온리 블러디☆매서커 중」
소년이 벌거벗고 있는 광경이 떠올랐다. 미묘한 곡선을 드러낸 몸을 마음의 눈으로 훑어 내리며 감미로운 흥분을 느꼈다. 손으로 만지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생생한 이미지가 그의 몸을 훑어 내렸다. 안 된다. 아무리 예뻐도 남자는 남자다.
「학원기숙사 일족 중」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음에도 독자는 화자에게 이입하기가 어렵다. 어려울 뿐만 아니라 화자를 이해하는 것도 쉽지 않다. 화자는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수준의 일반적인 사고를 하지 않으며, 서술은 화자를 이해하기 위한 도움이 되질 않는다. 사람들이 공감하고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드는 것보다 소설이라는 매체의 기능과 구조 자체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화자와 독자 사이가 이상하게 뒤틀려있는 이런 작품을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냉혹하고 비정한 것은 화자의 태도나 문장의 분위기가 아니라 독자의 마음이다. 독자는 일어나는 격렬한 사건들에 대해서 끊임없이 거리를 두면서 서사를 따라가게 된다. 아주, 이상한 하드보일드였다. 하드보일드한 소설이 아니라 독자를 하드보일드하게 조정해버리는.
“그런 걸로 가고 싶었어요. 처음엔 단단했다가 나중에 풀어져서 단단함이 애매모호해진 상태처럼 쓰고 싶었어요. 그래서 거리감은 하드보일든데 문장은 하드보일드하지 않은.”
‘거리감은 하드보일드’.
정확히 이 소설은 그 지점에서 딱딱하다. 손지상이 다루는 소재들은 독자에게 일부러 거리감을 두려고 작정한 것 같은 것들로 구성되어 있다. 주인공들은 수다스럽게 인육과 쾌락살인과 성적 세뇌에 대해서 떠들어대고 그 수다스러움 속에서 독자들은 이상하게 고립되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왜 굳이 인간들이 혐오스러워할 법한 소재를 선택하는가에 대해서 굳이 묻지는 않았지만, 종교에 대한 얘기를 나누던 와중에 그 단초를 발견했다.
“저는 신앙이라는 말을 꺼내거나 신을 믿고 있다는 발언이 신에 대한 배신이라고 생각해요. 여자친구한테는 좋아한다고 많이 말하는데(웃음) 신앙에서는 굳이 그런 말을 하는 게 신을 부정하는 게 아닌가.
“뭐, 나는 신의 일부지만 여자친구의 일부는 아니잖아요.”
“네, 그런 거죠. 그런 차원에서 종교라는 건 하나의 학문처럼 보이지 않아요? 우주를 설명하는 프로그램이요. 물리 우주 전체까지는 아니라도 인간들이 상상할 수 있는 범위 내의 일종의 집단 무의식을 운용하는 OS를…….”
이야기의 방식에 관심이 있을 뿐 서사를 독자에게 이입시키는 데에 관심이 없는 작가라면, 이 세계의 OS가 어떻게 굴러가는지에 관심이 있을 뿐, 신과 세계에 대한 사랑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을 수도 있을 것이다. 신은 어떻게든 세계를 잘 굴려갈 것이기에. 표제작 「데스매치로 속죄하라―국회의사당 살인사건」에서 표방하는 ‘타파스’에 대한 묘사는 매우 종교적이면서도 이상한 방식으로 종교와 거리를 두고 있다.
타파스라는 말이 있다. 산스크리트어로 깨달음을 얻기 위해 고행을 가해 억압을 상쇄시키는 행위를 말하는데, 데스매치는 세속적인 타파스라고 할 수 있다.
“더 괴로워하십시오. 더 고통스러워하십시오. 당신이 지은 죄를 고통의 불꽃으로 태우는 겁니다.”
(…) 더 많은 고통을 겪으며 죽어야 나쁜 카르마가 상쇄되어 더 좋은 육체와 운명을 타고 환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데스매치로 속죄하라―국회의사당 살인사건」중
이 단편집 전체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은 표제작이었다. 그리고 장백산은 유일하게 어느 정도 이입을 할 수 있는, 매력적인 캐릭터였다.
손지상 작가는 자기 자신은 감정 내지는 정념이 별로 없어서 캐릭터에 그런 것을 쏟아붓지 못한다느니, 생각과 감정은 다르다느니, 자신의 소설 속 캐릭터들은 인형과 같다느니 하는 이야기들을 늘어놓고 있었다. 그때 나는 불쑥 끼어들어서 말꼬리를 잡았다.
“장백산은 인간적이잖아요.”
“어, 왜냐면 장백산은 저예요.”
그리고 잠시 후에 자신은 감정의 에너지가 과도하게 있다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에는 자신은 자신에 대해 관심이 별로 없다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사실 손지상 작가의 이야기 흐름이 어디로 튈 질 몰라서 잠자코 듣고 있는 시간이 길었다. 들으면서 나는 손지상 작가의 소설만큼이나 손지상 작가 자신에 대한 이야기에서도 모순과 거리감을 느꼈다. 일부러 이러는 건가……?
“저는 저한테도 관심이 없어요. 제가 좋아하는 취향의 것이 있어서, 그 현상 세계와 정보 세계가 취향의 것들로 되어 있기는 한데, 저한테는 관심이 없어요. 저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가 없어요.”
하지만 그러기에는 손지상 작가는 인터뷰 내내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느끼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아주 많이 했다. 그는 괴담을 좋아하지 않고, 폭력을 싫어하고, 호러도 싫어하고, 기능에만 관심이 있고, 법명이 네 개가 있으며, 사람의 얼굴을 잘 잊어버리고, 현상과 순간을 분리해서 느끼며, 시각으로 생각하기보다는 청각으로 생각한다. 나는 그에 대해 너무 많은 정보량이 한꺼번에 쏟아져서 정신이 없을 정돈데 그가 자신에게 관심이 없다니!
“저는 보편적인 저에만 관심이 있어요.”
손지상 작가의 말을 빌려, 손지상 작가 자신조차 하나의 보편적 현상으로 상정하고 이야기해 보겠다. 나는 손지상 작가가 자의식이 엄청나게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뭐라고 얘기하건 간에 그는 내부로 잠입하는 에너지가 있다. 스스로 그 에너지를 어떻게 정의하건 상관없이, 나는 손지상 작가라는 현상을 자의식의 소용돌이라고 해석하겠다. ‘무엇이 어떻다’기보다는 ‘나는 어떻다’고 말하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이기에 더욱 그렇다. 다만, 손지상 작가의 입에서 발화되는 ‘나’가 현상으로서의 나가 아니라고 확언할 수는 없다.
“차기작은?”
“일제 강점기 때 오다 노부나가 부하 중에는 흑인이 하나 있었고, 백인 선교사가 하나 있었죠. 그들이 조선 여성을 임신시켜서 태어난 혼혈아 둘이 주인공이에요. 이런 전쟁고아들을 모아서 특수부대를 만들려는 공작을 둘러싼 이야기에요….”
너무 자세하게 얘기하면 재미가 없을 것 같아, 이 정도로만 줄이겠다. 다만 그는 이 소설이 역사소설이 아니라고 말했다.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
“다음에도 책 나오면 꼭 사주시고요, 또 다른 하나는 어 가끔은 소설책 말고 다른 것도 보시라고. 다른 것도 보시면서 소설을 써 보세요. 소설이든 뭐든 서사가 아니어도 좋으니까, 뭔가,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이득이 되지 않는 완전 무익한 행동으로 뭔가를 남겨보는. 그게 좋을 것 같아요. 곡이어도 좋고 자식이어도 좋으니까.”
그러니까, 나는 그를 모르겠다. 양 대신에 생텍쥐페리가 어린 왕자에게 그려 준 상자를 보고 어린 왕자는 뛸 듯이 기뻐했지만, 그가 내게 준 상자 속에서 나는 무엇을 발견해야 할지 아직도 헤매고 있다.
당신들은 어떤가?
데스매치로 속죄하라
: 국회의사당 학살사건
면 수 : 320쪽
가 격 : 10,000원
"...남성성의 전시는 바바리맨과 같이 과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상징물의 무력함과 덧없음을 들춰내기 위한 작업이었다.
회의주의자의 시대다. 참으로 따분한 노릇이지만 회의주의자의 시대다. 하나의 저항을 하나의 유치함으로 인식하는 불감증의 세대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데스매치로 속죄하라>가 품고 있는 폭력이 책 밖으로 튀어나와 이 한심한 세상의 뒤통수를 한번 세게 갈겨줌으로써 우리가 마주한 그 불감증이 무엇인지 알게 되기를." -dcdc, 추천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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