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구? 아몬틸라도라구? 큰 통으로? 그럴 리가? 카니발이 한창인 때에!”
“그러니 미심쩍단 말이네. 그리고 어리석게도 자네에게 상의도 않고 술값을 모두 지불해버렸다네. 자네를 찾을 수 없었지만, 좋은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말이야.”
“아몬틸라도라구!”
「아몬틸라도의 술통 The Cask of Amontillado」 에드거 앨런 포 Edgar Allan Poe
약 70여 년 전, 에드거 앨런 포가 쌀쌀한 뉴잉글랜드 가을날씨 속에서 옷깃을 여미며 쓴 글은 21세기 어느 교실에서 읽혀지며 한 아이의 식욕食慾을 자극하게 된다. 그리고 여러분께서 보시다시피 그 아이는 자라서 훌륭한 폭음가가 되어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꺄르륵. 죽은 포가 보면 화를 낼지 손뼉을 쳐줄지 의문이다 (포는 알코올 의존증으로 죽었습니다-_-). 그는 자신의 글을 통해 인간의 어두운 본성인 악의, 복수심 등을 말하려고 했지만 모든 일에 식食이 우선인 필자는 악의고 나발이고 그건 내 알 바 아니고(-_-) 포르투나토가 죽기 직전까지 부르짖던 술이 궁금하였다. 아몬틸라도! 아몬틸라도! 대체 이 술은 뭐길래 포르투나토가 눈을 뒤집고 환장해서 몬트레소르를 따라가는지. 그렇게 맛있나. 마시고 죽으면 꿀때깔 귀신이라도 될 수 있나. 시바! 너를 격하게 먹고 싶다!!
스페인이 자랑으로 내세우는 것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바로 와인, 그것도 주정강화 와인인 셰리와인이 아주 유명하다. 여기서 말하는 주정은 그 주정(a.k.a 진상) 말고 술의 도수를 뜻한다. 하긴 도수가 높으니 진상질도 2배가 되어 주정강화 와인은 맞다만. 셰리와인의 이웃사촌이자 친척으로는 바로 옆 나라 포르투갈에서 나오는 포트와인이 있는데, 둘 다 일반 와인에 비해 알코올 도수가 2배가량 높다. 차이점은 포트와인은 레드와인을 사용하는 반면 셰리와인은 비노 블랑코(Vino Blance화이트 와인), 팔로미노Palomino라는 황금빛이 도는 포도 품종을 사용한다. 색이 깊고 진할수록 그 셰리와인의 알코올 농도는 높은데 아몬틸라도의 경우 중간 단계 정도. 아니 그런데, 이 스페인 출신 와인이 왜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아몬틸라도의 술통」 단편에 나오게 되었느냐.
셰리와인은 17세기 이전에 스페인의 항구도시 헤레스 데 라 프론테라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셰리라는 이름이 어원도 바로 이 도시의 이름에서 온 것 (셰리는 스페인어로는 헤레즈 Jerez. 우리가 말하는 셰리Sherry는 영어식 발음이다). 건조한 안달루시아 지방의 기후를 이용, 여러 해 동안 공기에 노출시킴으로써 기존의 와인을 증발-농축하는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지는데, 와인을 꼬들꼬들 말린다고 표현해도 좋을 법하다. 그러던 것이 19세기 초 새로운 와인 숙성법인 솔레라 시스템이 발견된다. 새 와인 숙성법으로 만들어진 셰리는 기존보다 더욱더 독특한 풍미를 가지게 되어 유럽인들의 이목을 끌었고, 이 붐이 일어난 것이 바로 포가 소설을 쓰고 있을 무렵인 19세기 중반이었다. 이 빅 웨이브는 탈 수밖에 없잖아!
그런데 왜 하필 스페인 와인이었나. 와인이라면 프랑스가 독보적이지 않는가? 슬프게도 그 무렵 프랑스 포도농장은 꿈도 희망도 없던 시망 상황이었다. 와인 생산 1~2위를 다투던 프랑스는 혁명 이후 ‘이제 귀족에게 뜯기는 거 없으니 나도 돈 되는 와인 만들어서 부르주아지 되야징!ㅋ’ 하고 시작된 와인의 과잉생산으로 인한 질의 저하를 겪고 있었다. 그리고 과잉생산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이 채 오기도 전에 프랑스 전역에서 포도나무 기생충이 생겨 와인 생산자들의 뒤통수를 가차없이 날려준다. (이젠 정말 끝이야) 경제적으로 망하기 전에 물리적으로 시궁창이 되어 쓰리아웃 당하고 폭망의 길을 걷고 있었던 프랑스 와인은 20세기 초까지 복원산업을 하는데 그 와중에서도 성질 급한 프랑스인들답게 막 시위하고 정부 욕하고 사람도 죽고…… 하여간 다사다난했다. -_-; 역시…… 혁명한다고 왕의 모가지를 딴 패기의 나라.
또 한 가지, 소설 안에서 주인공 몬트레소르와 포르투나토는 괴랄한 복장이다. 몬트레소르는 가면에 망토를, 포르투나토는 광대 복장을 하고 있는데, 이로 보아 배경일은 사육제 마지막 날인 ‘기름진 화요일’일 확률이 높다. 혹시 마디 그라Mardi Gras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맞다. 바로 그 마디 그라가 바로 이 ‘기름진 화요일’을 뜻하는 날이다. 이날은 금육이 시작되는 사순절 바로 전날이며,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나라 되찾은 백성처럼 술을 먹고 고기를 마시며(?) 방탕하게 노는 날이다. 어느 정도로 방탕하게 노냐면 ‘와! 내가 이렇게 개돼지다! 내가 이렇게 축생같이 논다!’ 라는 것을 숨기기 위해 시작한 것이 축제 분장과 가면이라고…… 왠지 치킨이랑 피자를 각각 한 손에 들고 “그래! 다이어트 시작하는 거야! 내일부터!”라고 외치는 사람의 환영이 보이는 듯하지만 어쨌거나. 이렇게 노는 날이니 포르투나토가 이미 거하게 취해 있었던 것도 납득이 간다. 그러던 중 몬트레소르가 와서 ‘아저씨, 좋은 거 있어요’ 속삭이니 얼씨구나 좋구나 하고 따라간 거고. 그 때문에 포르투나토는 와인 대신 저 자신이 50년 동안 푹 숙성되어버리는 기구한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소오름.
이렇게 긴 숙성 기간을 거치는 와인치고 셰리와인은 비싸지 않고 요즘은 한국의 많은 바에서도 취급하고 있다. 그 독특한 풍미를 맛보고 싶은 사람은 한 번쯤 마셔보라고 권하고 싶다. 단맛이 강하면서도 은근하게 도수가 쎈 술이므로 작업주로도 적극 추천하는 바. 덤으로 셰리와인은 각기 다른 연도의 와인이 한 번에 섞여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빈티지를 표시하지 않는다 (빈티지가 적혀 있지 않다고 하여 싸구려 와인이 아니라는 것). 달큰한 과일향과 고소한 견과류 향을 동시에 맡을 수 있는 특이한 매력을 가진 술이다. 마시는 도중에 누가 좋은 거 있다고 따라오라 하면 절대 따라가지 말길 바라며.
타할陀轄
음식, 공포, 미술, 섹스에 관한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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