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8월 9일 북스피어에서 테드 창의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김상훈 옮김, 216쪽, 8,800원)가 ‘에스프레소 노벨라’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가상의 애완동물 ‘디지언트’와 빠르게 변화하는 소프트웨어 업계의 생태계를 통해 미래에 인공지능이 대면하게 될 것으로 예측되는 현실적인 문제들을 다뤘다. 이 작품은 2011년 휴고 상과 로커스 상 중편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한 바 있다.


8월 20일 샘터사에서 존 스칼지의 『휴먼 디비전』 1,2권(이원경 옮김, 1권 368쪽 2권 352쪽, 각권 12,800원, 완결)이 출간되었다. ‘노인의 전쟁’ 시리즈와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이 책은 ‘노인의 전쟁’ 시리즈의 주인공, 존 페리의 입대 동기인 해리 윌슨을 중심으로 개척연맹과 콘클라베, 그리고 지구와 개척연맹 사이의 갈등을 다루고 있다.


8월 26일 새파란상상에서 레리 니븐의 『링월드』(고호관 옮김, 536쪽, 15,000원)가 출간되었다. 2000년 출간된 이후 13년 만에 복간된 이 책은 지구보다 삼백만 배 가량 거대한 인공구조물 ‘링월드’를 탐사하는 이야기를 다룬 하드 SF이다. 이 작가가 ‘알려진 우주’를 바탕으로 집필한 오십여 편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로, 다양한 후대 작품들에 영향을 끼쳤다. 


8월 28일 북로드에서 마리사 마이어의 『신더』(김지현 옮김, 440쪽, 13,800원)이 출간되었다. ‘루나 크로니클’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으로 동화 「신데렐라」를 재해석한 이 책은 몸의 일부를 기계로 개조한 사이보그 정비공 신더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두 번째 작품 『스칼렛』도 출간될 예정이다.




판타지 


8월 8일 학산문화사에서 하세쿠라 이스나의 『늑대와 향신료』 17권(박소영 옮김, 240쪽, 6,800원)이 출간되었다. 오랜 세월을 살아온 현랑 호로와 행상인 로렌스의 여행을 다룬 경제 판타지 시리즈로 이번에 출간된 17권으로 완결되었다. 지난 사건들의 후일담과 잡지에 연재되었던 단편 세 편이 수록되어 있다.


8월 23일 소담출판사에서 조너선 옥시어의 『피터 님블과 마법의 눈』(황소연 옮김, 456쪽, 13,800원)이 출간되었다. 작가의 데뷔작이며, 누구보다 약한 소년 피터 님블이 위대한 영웅이 되기까지를 그린 판타지 소설이다. 항구에서 버러지, 쥐새끼로 불리던 눈먼 소년 피터 님블은 모험을 통해 부조리한 세상과 맞서 싸우기로 결심한다. 


8월 26일 노블마인에서 카산드라 클레어의 ‘섀도우 헌터스’ 1권 『뼈의 도시』(나중길 옮김, 600쪽, 14,000원), 2권 『재의 도시』(오정아 옮김, 488쪽), 3권 『유리의 도시』(588쪽)가 출간되었다. 내성적인 성격의 소녀 클라리 프레이가 사건에 휘말려 악마를 사냥하는 능력을 얻고 늑대인간, 뱀파이어 등 비인간적 존재들로 구성된 ‘다운월드’에 대해 알게 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시리즈는 2014년 6권까지 예정되어 있으며,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미스테리


8월 1일 지만지에서 김내성의 『마인』(김현주 엮음, 216쪽, 12,000원)이 출간되었다. 원전에서 핵심 내용만 발췌하는 ‘지식을만드는지식 천줄읽기’ 시리즈로 출간된 이 책은 1939년 2월 4일부터 10월 11일까지 조선일보에 연재한 170회 분량 중 49회를 발췌했다. 연재 당시의 표기법을 따르고 있으며, 해설과 함께 여덟 편의 에피소드가 수록되어 있다.


8월 8일 청어람에서 『지옥문을 여는 방법: 2013 올해의 추리소설』(448쪽, 12,000원)이 출간되었다. 한국 추리작가협회가 선정한 추리 소설 열두 편을 수록한 책으로, 권경희, 김경수, 김범석, 김재성, 김주동, 성성명, 양수련, 이상우, 조동신, 최종철, 한수경, 홍성호, 열두 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8월 8일 학산문화사에서 니시오 이신의 『소녀불충분』(주원일 옮김, 260쪽, 12,000원)이 출간되었다. 작가가 된 화자가 10년 전 초등학생에게 납치, 감금당했던 사건을 회술하는 이야기이다. 소설과 자서전의 경계에 서 있는 듯한 분위기가 특징이다.


8월 10일 손안의책에서 황희의 『얼음 폭풍』(304쪽, 12,000원)이 출간되었다. 장편소설을 출간하기 전에 작가가 공모전에서 입선한 주요 작품들을 묶은 단편집이다. 미국을 배경으로 소수자들이 겪는 다룬 단편 네 편, 한국을 배경으로 한 단편 세 편, 총 일곱 편이 수록되어 있다. 작가는 『섬, 그리고 좀비』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2, 3 등에 작품을 수록한 바 있다.


8월 15일 모비딕에서 마쓰모토 세이초의 『시간의 습속』(김경남 옮김, 320쪽, 13,000원)이 출간되었다. 1961년 5월부터 다음해 11월까지 잡지 《여행》에 연재되었던 소설로, 전작 『점과 선』으로부터 4년 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점과 선』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 범인을 상정하고 추리를 시작하는 이른바 알리바이 허물기 소설로, 사회파 소설답게 당시 시대상을 잘 그려냈다.





송한별

‘창작집단 몽니’의 우두머리. 소규모 출판 기획 및 편집자. 그러한별.

newshbx2@naver.com   @newshbx2


불사조의 전설


은근슬쩍 넘어가려고 했지만, 본래 이번 차례에는 대안 출판으로써의 킥스타터 펀드에 대해 말하기로 했었다. 그런데 그새 좀 재미있는 일이 생겼다. 바로 사실상의 전업 1인 출판사인 불새 출판사의 등장이다. 이 이야기를 하고 나서 기존 주제를 다시 다루는 쪽이 좋을 듯해서 예고드렸던 주제는 한 차례 뒤로 미루었다. 양해 부탁드린다.

자. 보라. 21세기의 여명 앞에 장렬히 산화한 그리폰(북스)의 잿속에서 불사조는 다시 태어났다. 이름하여 불새 출판사다. 주로 20세기 중후반의 SF 작품들을 낼 계획이라고 하며, 1차분 세 권은 이미 출간되었다. 이 출판사의 실무는 한 명이 담당한다. 표지 디자인, 번역, 계약, 본문 편집과 교정교열, 인쇄 감리 등의 제작 업무와 재고 관리 및 서점 마케팅까지 한 명이 전부 한다. 사실상 출판에 관련된 모든 업무다. 그간 출판계에 발도 담근 적 없었던 사람이 갑자기 이런 일을 벌였다. 그 이유는 순진하다(나쁜 뜻은 아니다). 불새 출판사는 “보고 싶은 SF가 안 나와서 내가 차린 출판사”다. 풋풋한 열정이랄까, 실제로 이 출판사에서 만든 책을 보면 예전에 팬들끼리 번역해서 제본해 보던 책 생각이 난다. SF 팬들은 이 순진한 만듦새를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좀 아이러니한 표현이지만, 열렬한 아마추어리즘이라고 할까. ‘정말로 이런 짓을 저지른 인간이 있었어!’라는, 감탄 비슷한, 팬으로서의 연대의식을 느낄 만하다. 어쩌면 당신은 불새 출판사의 카페에 올라온 출사표를 보고 박수를 쳤을 수도 있다.

거기까지다. 불새 출판사의 책들은 현재 상태로는 절대로 현재의 SF 팬덤 바깥으로 확장하지 못한다. 출판사 담당자도 이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확장 불가능한 최소한의 팬덤’의 수요를 감안하고 제작이 이루어졌음은 출판사의 카페에 올라온 글에서도 이미 짐작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출판사가 다음 책을 출간할 수 있을 정도의 이득이 남으려면 많이 팔거나 제작 비용을 줄여야 한다. 그러나 SF 팬임을 밝힌 불새 출판사 담당자는 SF의 판매량이라는 변수의 상한선을 냉정하리만치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지속 방안’은 제작 비용의 절감에 집중된다. 그리고 그 줄어든 비용의 대부분은 인건비다. ‘내가’ 좋아하니까 ‘내가’ 돈 덜 받을 각오를 한다.

앞으로 꾸준히 출간이 계속된다치고, 발간하는 모든 책이 평타 이상의 성적을 기록하지 못했을 경우에 이 출판사가 리스크를 연착륙시킬 수 있는 방법은 담당자의 인건비를 더 낮추는 것뿐이다. 리스크를 버텨줄 축적 자본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담당자는 리스크를 극복하기 위한 고통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 SF에 대한 애정을 통해 극복하는 수밖에 없다. 

감동적인 이야기지만 나쁜 징후다. 사업의 문제를 애정으로 극복해 나간다는 말은 그 일 또는 업종이 이미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는 뜻이다. SF라는 업종이 살아남을 수 있는 선택지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앞서 이 코너에 연재했던 글(on우주 7월호에 수록)에서도 SF 출판사의 독자 펀드가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 애정을 담보 삼은 대출 말이다. 시장으로써의 존속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을 누군가의 열정과 소수의 맹목적인 애정으로 메꾸는 데는 한계가 있다.

물론 이런 위기론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님은 많은 팬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수도권 아파트 가격 붕괴의 위기론이 점점 목소리를 높이는 와중에도 집값은 엇비슷한 것처럼, SF 역시 안 된다 안 된다 하면서 어떻게든 살아남고 있다. 팬들이 체감하는 위기론은 좌절한 SF 시리즈들과 문 닫은 SF 전문 임프린트들을 마음에 묻는 과정에서 발생한 부정적인 심리적 피드백에 불과할까?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사용할 수 있는 패가 남아 있었고 지금은 그 패를 소모하는 중이다. 바로 대형 출판사와의 협업, 즉 임프린트다. 웅진의 오멜라스나 현대문학의 폴라북스처럼 말이다.

그럼 풍부한 자본과 출중한 마케팅 역량을 갖춘 대형 출판사의 임프린트는 군소 SF 출판사의 상황과 다른가? 미스터리나 스릴러 쪽을 제외하고 SF로 한정짓는다면 상황은 역시 좋지 못하다. 열린책들이 소위 ‘경계 소설’을 표방하며 내던 작품들도 그 숫자가 점점 줄어가고 있고, 오멜라스도 끝났고, PKD 선집을 출간하며 신성의 자리를 차지한 폴라북스의 출간 속도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한때 J. G. 발라드의 SF를 중심으로 몇몇 책들을 낸 문학수첩도 마찬가지다. 대형 출판사의 임프린트는 출판사들이 자발적으로 장기적인 기획을 하고 움직였다기보다는 SF에 관심이 있는 기획자 또는 편집자들이 프로젝트를 따낸 경우에 가깝다. 일종의 계약직인 셈이다. 따라서 대형 출판사의 SF 임프린트는 사실상 첫 프로젝트에서 이미 사활이 갈린다. 그리고 지금까지 ‘활’의 길을 걸은 임프린트는, 글쎄, 사실상 없다고 보는 게 좋겠다. SF 시장은 대형 출판사가 원하는 수준에 결코 미치지 못한다.

그럼에도 최근 몇 년 동안 여기저기서 대형 출판사의 SF 임프린트가 생겨날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하나는 수많은 출판사들을 돌아다니며 기획을 따내고 어떻게든 새로 깃발을 꽂았던 열성적인 SF 종사자들이다. 그런데 더 치명적인 이유가 있다. 그 대형 출판사들이 그제껏 본격적으로 SF를 해본 적이 없었다는 점이다. 임프린트를 닫았거나 점점 닫아가는 출판사들은 이제 SF 시장이란 게 뭔지 경험했고, 무슨 큰 변수가 있지 않은 이상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손에 쥔 패는 줄어들고 있다.

만약 대형 또는 중견 출판사와의 협업 루트가 줄어든다면 남은 방법은 자생뿐이다. 그 자생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질지는 앞서 간략히 서술했다. 어쩌면 불새 출판사는 한국 SF 시장의 재미난 에피소드가 아니라 도래할 격랑의 전주곡인지도 모른다. 나는 이 출판사의 이름이 참 절묘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을 태우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새가 방금 우리의 어깨 위로 날아와 앉았으니, 어쩌면 곧 큰 바람이 불 것이다.





최원호

어린 시절 금성출판사의 SF로 본격적인 독서를 시작했다.

인터넷서점 알라딘에 MD로 들어가서 유아 그림책부터 각종 수험서까지 다양한 분야의 책을 팔아왔다.

현재는 소설과 예술 분야를 담당하고 있다. on우주 홀수호에서 칼럼 “소매가로 책을 팝니다”를 연재한다.

한때는 한국에서도 장르소설이 대세가 되는가 싶었다. 미스터리, SF, 호러, 판타지 등 다양한 장르의 소설을 출간하는 황금가지의 밀리언셀러클럽이 2004년에 출범했고, 2006년 비채의 모중석 스릴러 클럽이 가세하면서 2007~2008년에는 마치 장르문학이 출판계의 대세를 이루는 것 같은 착시현상마저 일으켰다. 황금가지(민음사), 비채(김영사), 문학동네, 노블마인과 시작(웅진) 등 대형 출판사에서도 일본의 엔터테인먼트 문학이 대거 쏟아져 나왔고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과 기리노 나쓰오의 『아임 소리 마마』 등은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 리처드 매드슨의 『나는 전설이다』도 영화 개봉 덕에 뒤늦게 불티나듯 팔려 나갔다. 미야베 미유키, 히가시노 게이고, 온다 리쿠 등 인기 작가들은 20편이 넘는 작품이 꾸준하게 출간될 정도로 성황을 이루었다. 07년에는 장르문학잡지 《판타스틱》도 창간되었다.

하지만 잠시였다. 《판타스틱》은 폐간했고, 야심차게 시작했던 출판사들은 장르문학을 접었고, 출간되는 종수도 줄었다. 그렇다고 파산은 아니다. 인기 작가들의 작품은 꾸준히 나온다. 새롭게 뛰어든 출판사들도 많이 있다. 다만 불만은 어느 정도 지명도가 있는 안전한 작품들,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이 주로 나오고 있다. 『유니버설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독백』 같은 소설이 다시 나올 수 있을까? 하세 세이슈의 『불야성』 3부작에 이어 다른 작품들은 과연 나올 수 있을까? 마이너한 성향의 장르소설들이 설 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셜록 홈즈가 몇만 부가 팔린다 한들 그건 추억의 소비일 뿐, 장르문학 전체의 시장이 넓어지는 것은 아니다. 꾸준하게 장르문학을 읽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안정적인 독자들이 성실하게 좋아하는 작가, 작품을 소비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하나에 치우치지 않고, 다양한 취향으로 뻗어 나가는 것.

다시 생각해봤다. 그렇다면 왜 장르소설을 읽는 것일까? 나는 왜 범죄소설을 비롯한 장르소설에 빠지게 된 것일까? 딱히 추리소설에 빠져든 계기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어린 시절의 취미를 놓지 않고 죽 가져온 것뿐이다. 어른이 된 이들이 추리소설을 왜 읽지 않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추리소설의 순수한 오락성이 맘에 들지 않았던 것일까? 밀실과 완전범죄라는 요소가 작위적이고 일종의 게임이라는 것은 맞는 말이다. 하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는 게임도 필요한 법이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미스 마플을 보면, 아무리 작은 범죄라도 세상의 어떤 측면을 드러내고 있다. 단 한 번도 도시에 나가보지 않은 미스 마플이지만, 그녀는 세상의 모든 법칙과 사람들의 다양한 마음을 헤아리고 있다. 인간의 격정적인 감정과 치밀한 두뇌게임이 버무려지는 각종 범죄에는, 세상사의 일면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다른 장르도 그렇다. SF는 ‘과학’이라는 틀 안에서, 인간의 존재를 다시 생각한다. 인간만이 유일한 지적 생명체가 아닌 세계에서 인간이란 과연 어떤 존재일까를 생각하고, 주변 환경이 전혀 다른 곳에서 인간이 살아가야 하는 상황을 통하여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판타지는 과학 대신 ‘환상’을 활용한다. 공포소설은 우리 내부의 비합리성, 어둠의 존재를 일깨운다. 공포소설이 SF나 범죄소설과 쉽게 만날 수 있는 이유는, 인간이 아닌 타자의 존재가 우리에게 두려움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범죄소설, SF와 판타지, 공포소설 등은 단순하게 장르 자체의 즐거움만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장르소설 역시 ‘소설’이고, 자체의 궤도를 달리면서도 끊임없이 다른 것을 욕망한다.

이미 레이먼드 챈들러의 추리소설은 문학으로 인정받고 있다. 단순하게 오락만을 위해서 즐기는 소설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탐구와 세계에 대한 질문을 담고 있는 우수한 소설로 평가한 것이다. 순문학에서도 추리 기법을 이용한 소설들이 많이 등장했다. 장르문학이라고 했을 때, 지나치게 규정이 협소해지는 위험이 있다. 어떤 장르를 표방하고 있건, 그것이 소설 자체의 가치를 규정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장르로 소설이나 영화를 구분하는 것은 그 구조와 형식을 따지는 것일 뿐이다. 이를테면 일본에서 매년 베스트를 꼽는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에서 1988년부터 2008년까지 통틀어 베스트를 골랐을 때, 해외 작품에서 1등을 한 것은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었다. 『장미의 이름』은 분명히 미스터리이지만, 동시에 탁월한 정통 문학 작품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장르만으로 『장미의 이름』을 규정하는 것은 분명히 무리가 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오에 겐자부로가 『치료탑 혹성』 『2백년의 아이들』 등의 작품에서 SF 기법을 활용하지만 그를 SF작가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빼앗긴 자들』 『어둠의 왼손』의 어슐러 르귄이나 <당신 인생의 이야기>의 테드 창은 SF 작가로 분류되지만 그들의 작품은 웬만한 정통 문학보다 탁월한 문학성을 지니고 있다.

한국에서는, 미스터리는 범죄를 조장하고 SF는 황당무계하다는 등의 편견과 선입관이 있는 게 사실이었다. 그래서 장르문학을 표방하는 것이 쉽지 않았고, 대중적인 저변이 확대되기도 힘들었다. 반대로 장르문학 역시 문학성을 가지고 있음을 강변하는 쪽에서는, 역설적으로 장르문학의 즐거움이 무엇인지 때로 잊어버리거나 무시하는 일종의 역차별도 있었다. 미야베 미유키는 소설을 쓰면서 늘 생각하는 것이, “어떻게 쓰면 독자가 더 즐거워하고 재미있어 할까” 라고 말했다.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은 미스터리로서도 A급이고, 문학성을 따져도 상위권에 속할 작품이 허다하지만 어디까지나 그의 지향은 ‘엔터테인먼트’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순수문학, 정통문학과의 구별을 원한다면 장르문학보다는 대중문학이나 엔터테인먼트 문학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그렇다면 장르소설, 대중소설은 단지 도피일까? 나는 도피도 좋다고 생각한다. 내가 장르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재미있기 때문이다. 책을 잡으면, 다음 이야기를 알고 싶어서 도저히 놓을 수 없는 소설들이 좋다. 거기에 아무런 의미가 없어도 좋다. 단지 킬링타임이라고 해도, 나는 그 매혹에 기꺼이 빠져들 용의가 있다. 다만 그 이상도 분명하게 존재한다. 좋은 것은 그냥 좋지만, 가끔은 그걸 넘어선 걸작에서 어떤 ‘빛’을 발견한다. 고전이나 걸작들에서 맛볼 수 있는 위대함. 장르를 표방한 소설이 어떤 지점에서 위대한 성취를 이루었는지를 제대로 찾아내고, 알리는 것은 중요하다. 그리고 킬링타임으로 볼 수 있는 작품들도 더 많이 필요하다. 양적으로 풍부해져야만 그 안에서 걸작들도 자연스럽게 탄생할 수 있는 것이니까.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