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운명 따위에 지지 않는 법

 


<메르시아의 별>이라는 게임이 있다. 

TRPG 알못인 나는 잘 몰랐으나, 검색만 몇 번 돌려봐도 굉장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게임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이 소설은 그 게임의 서장에서 출발했다고 한다정확히는 이 게임의 제작사인 '초여명'의 김성일 대표와 이 책이 나온 출판사인 '온우주'의 이규승 대표가 만나서 벌어진 일이다

이규승 대표는 이 게임의 서장같은 소설이 있으면 좋겠다고 지나가는 말로 말했는데, 김성일 대표가 서장을 자신이 썼다고 대답해버린 것이다. 이규승 대표는 게임 <메르시아의 별> 세계관으로 소설을 한 권 써 달라고 '쫓아다녀가며 부탁을 했다'고 한다. 소설을 원작으로 한 게임은 적지 않다. 하지만 게임을 원작으로 한 소설은…… 많지는 않다. 많은 경우 이런 소설들은 게임에 대한 일종의 머천다이징으로 팔린다. 그러나 소설 <메르시아의 별>은 머천다이징으로 나온 것이 아니다. 소설 그 자체로서 유의미하게 출판되었다.

 

한 번이라도 게임을 해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어떤 게임이건 게임은 그 세계 안에서 작동하는 룰을 가진다. 게임 속에는 목표와 한계, 의지가 존재하고 그 안에서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데에 게임의 묘미가 있다. 소설의 캐릭터를 배경 위에 얹어놓는 작업도 마찬가지다. 선명한 배경이 존재하면, 그 안에서 캐릭터들은 자신의 논리를 가지고 길을 찾아간다. 때로 작가는 그 논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찾아내는' 것에 모든 역량을 사용해야 할 때도 있다. 이 소설은 사실 물어보아야 할 것이 많지 않은 작품이었다. 캐릭터들과 배경이 모두 각자의 논리를 분명하게 구현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게임 <메르시아의 별>을 접해 본 적이 없었기에, 먼저 궁금했던 건 게임에 대한 것이었다. 소설 안에 있는 섬세한 설정들이 게임 속에서는 어떤 식으로 구현되는지.




 

"처음 이 게임을 만든 건 2002, 2003년 정도예요. 그 당시만 해도 TRPG를 할 때는 마스터(TRPG를 진행하는 사람)가 설정을 다 해 왔어요. 플레이어들은 단지 캐릭터만 만들어서 게임을 했죠. 저는 플레이어들이 그걸 넘어서서 세계의 일부까지 좀 더 만드는 게임을 생각해 봤어요. 지리, 역사 같은 것들을 만들어서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도록 제공하는 거죠. 기본적인 큰 틀로는 '제국'이 있습니다. 모든 다른 나라를 지배하는 강력한 제국입니다. 플레이어들은 제국에 뭔가를 뺏기고 지배를 당해서 독립 운동을 하는 설정이예요."

 

"아이디어 자체가 플레이어한테 설정을 맡기겠다, 이런 데서 왔다는 말씀이시죠?"

 

". 특히 한국 사람한테는 굉장히 편리할 거라고 생각을 했어요. 서양 사람들과 대화하다보면 '식민지 서사'라는 걸 이해 못 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계속 듣고 자란 식민지 서사가 있잖아요. 그런 한국적 감상을 판타지 세계에 보편적으로 적용시킬 수 있겠구나……."

 

"그러면 이 소설의 구체적인 배경설정은 지구 역사 배경으로는 언제쯤을 짐작해야 할까요?"

 

"그건 많이 섞으려고 했어요. 다양하게 나타나고 싶었거든요. 제국의 이미지는 기본적으로 로마제국을 모델으로 삼았어요. 로마시대는 고전시대지만, 이 제국에는 극도로 발달한 테크놀로지가 있죠. 마동기관이라는. 그리고 아를란드로 가면 중세의 왕과 기사 이야기가 나와요. 그건 게임과 똑같아요. 게임에서도 다양한 시대배경으로, 시대고증을 할 필요 없이 플레이를 하도록 했거든요."

 

플레이어 자신이 좀 더 많은 것을 결정할 수 있는 게임은, 마스터와 플레이어 간의 관계가 조금 더 수평적이 될 것이다. 형식과 내용은 별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실제로 많은 작품들이 그렇지 않다. 영화도 문학도 게임도 마찬가지다. 반드시 형식은 내용을 담보하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민주주의라는 국가형태나 공화국이라는 형태가 그 내용을 담보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메르시아의 별>이라는 게임이 가지는 형식, 그리고 이 소설이 가지는 형식에 대해서 다시 주목해 보았다. 더욱이 이 소설은 세 명의 주인공을 가지고 있다.

 

*

 

제국에는 여러 속국들이 있지만, 이 소설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속국은 '아를란드'. [아를란드 외에는 카모리와 레돈이 있다. 영국의 지방이름들을 조금씩 뒤튼 이름이다. 잉글랜드(England)는 아를란드, 웨일즈의 옛 이름인 컴리(Cymru)는 카모리, 스코틀랜드의 옛 이름 칼레도니아(Caledonia)는 레돈에 해당한다.] 아를랜드, 카모리, 레돈 모두 제국에게서 탈주하고 싶어하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서로 정답게 동지국으로서 우애를 가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제국으로부터 아를란드가 해방되는 과정을, 이 소설은 세 명의 주인공을 중심으로 따라간다. 한 명은 아를란드를 지키는 수호신, 화룡에게서 힘을 얻은 '자칭' 아를란드의 공주 로란, 또 한 명은 진짜 적성을 찾아서 기숙학교(?)를 도망나온 꼬마 마법사 아리엔, 마지막은 사랑하는 여인의 발자취를 찾아 헤매는 복수귀() 케인이다. 이 설명이 믿을만한 지는 책을 사서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캐릭터 하나. 로란

 

소설의 시작부분을 열어젖히는 주인공은 로란이다. 검사, 조금 더 정확히는 검술교사였던 로란은 제국으로 인해 남편과 딸을 모두 잃었다. 모두를 잃어버리고 나서 로란은 그 모든 것을 되찾기 위해서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바꿔나가기 시작한다.

 


"로란은 시작할 때부터 가족이 없어요. 다 죽었어요. 이 사람은 더 남은 게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가능할지를 따지지 않고 화산에 뛰어들었죠. 거기서 용을 만날 수 있다는 전설을 믿은 건데, 사실 저는 로란이 그 전설을 어느 만큼 믿었는지 잘 모르겠어요. 사실은 죽으러 갔을 거라고, 자살하러 갔을 거라고 생각을 해요."

나는 아를란드의 공주다. 이 나라의 왕이 될 것이다. (11p)

 

모든 것을 상실하고, 용이 없다면 죽어버리겠다는 생각으로 화산에 간 서른 살의 과부 검사는 제국의 마법에 묶인 채 구속당한 용을 마주한다. 용의 고통과 슬픔을 본 그녀는 그곳에서 자신이 아를란드의 왕이 되겠다는 결심을 한다.

 

"상실의 경험이라는 바탕이 있잖아요. 사람들은 살면서 가끔씩 그 경험을 다른 사람들에게 투영하죠. 로란은 거기에 기반해서 더 달려나갈 수 있는 거예요. 로란은 남편하고 딸이 말려들지 않았으면, 계속 그렇게 살았을 거예요. 검술교실에서 칼싸움 가르치면서. 제자들이 출세하면 이제 뭐 기부금이라도 받으면서. 그런데 그렇지가 않았거든요. 내가 당했으니까 누군가가 또 다치면 안 된다고 생각을 하는 거예요."


 

가족을 상실한 로란의 경험은 마을 주민들에게 확장되고, 민족으로 확장되고, 끝내는 '국가'의 형태까지 확장된다. 제국에게 무언가를(금전이건 자유건 행복이건) 빼앗긴 사람들에게 로란은 이입하고, 자신을 공주로 자칭했을 때처럼 로란은 스스로를 왕으로 자칭하게 된다. 사람들은 로란이 스스로를 어떤 의무의 위에 얹을 때마다 그만큼의 기대를 건다.

 

로란은 생각했다. 자기가 항복하러 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저 요새에 아무도 없을 것이다. 뒤에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있다. 그날 밤의 빛 기둥을 보고 온 사람들이다. 농민이 많지만, 왕도에서부터 온 사람들도 적잖이 있다. (……) 에메르는 로란에게서 운명을 보았다고 했다. 로란은 여기 모인 사람들에게서 같은 것을 보았다. 25군단의 본대가 아를란드를 멸망시킨다 해도, 설령 메르시아의 별이 아를란드를 잿더미로 만든다고 해도, 그것까지 포함해서 전부 이 나라의 운명인 것이다. 로란은 우르마스를 꺼내 하늘을 가리켰다.

"아닙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제국의 요새를 공격합니다. 돌아가고 싶은 사람들은 돌아가도 좋습니다."

뒤에서 천둥과 같은 함성이 일었다. (217p)

 

그리고 로란은 정말로 왕이 되고 만다. 로란의 이야기는 '운명'에 대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조금 다른 부분이 있다. 로란의 정체성은 먼저 선언되지만, 그 정체성이 로란을 구성해 나간다. 로란은 아를란드의 공주라고 스스로를 선언했기에 그 지향점을 통해 구성되어 나간다. 로란 자신도, 로란을 둘러싼 주변도 로란을 공주로 만들어낸다. 왕이 되기 위해 달려가는 공주는 왕이라고 선언하고 나서 왕의 위치로 점해진다. 자신이 행동해 나가는 방향대로 정체성이 만들어진다. 역사는 반드시 사람을 구성한다. 때로는 우연적인 사건도 그 역사에 결합할 수 있지만, 무엇보다도 어떻게 살아가겠다는 인간의 의지가 개인사의 구성에는 큰 부분을 차지한다. 로란은 자신의 삶을 구성해서 역사를 바꿨다.

 

마동기관, 클라리오스와의 싸움에서 화룡이 패배했을 때 로란의 어깨에는 날개가 돋는다.

 

온몸이 온천에라도 잠긴 듯 따뜻해졌다. 로란의 심장은 큰 북처럼 울리고 있다. 그것은 화산에서 나는, 용이 자는 소리와도 닮아 있다.

날개가 활짝 펴졌다. 마치 원래부터 갖고 있던 것처럼 자유자재로 펄럭였다. 로란은 날아올랐다. 심장이 갈수록 크게 울렸다. 인간의 작은 몸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클라리오스도, 화룡도, 윌프리드도, 아리엔도, 아를란드 사람들도 불기둥의 빛에 가려 보이지 않게 되었다. (336p)

"로란이 어떻게 될 지는 알았어요. 로란은 용이 돼요. 용이 됐어요."


단호하게 말하고 나서 김성일 작가는 잠깐 생각하다 다시 덧붙였다.

"아닐 수도 있죠. , 누가 알겠어요."

 


캐릭터 둘. 아리엔

 

아리엔은 자신의 능력을 아직 다 알지 못하는 어린아이다. 그녀는 순진하고 무구하다. 다만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싶다는 한 가지 욕망만으로, '나쁜 마법사' 엘드레드를 자신의 몸 속에 봉인하게 되었다. 그녀의 무기는 그 순진하고 무구함에서 온다. 바로 '상상력'이다.

 

"제일 목적이 개인적이죠. 딱 자기에 관한 거니까. 저는 세 주요인물 중에서 아리엔이 제일 좋거든요. 도와준 사람은 한 명(케인)밖에 없고, 머릿속에서는 꼰대 마법사가 들어앉아서 이래라 저래라 하고."

 

"꼰대 마법사가 성격도 나쁘고."

 

"나쁜 놈이니까."

 

"나쁜 놈이어도 성격은 좋을 수도 있잖아요!"

 

"나중에 어떻게 변심할지 모르니, 내일은 저런 놈 정도 순식간에 죽일 수 있는 주문을 가르쳐주마." (78p)

마음 속에서 엘드레드가 아리엔에게 끊임없이 주문하는 것은 배신과 악의다. 엘드레드는 자신의 욕망을 위해 고압적인 태도로 끊임없이 아리엔의 마음 속에서 악의를 깨워내기 위해 노력한다. 아리엔의 마법사적 능력이 자신의 상상력에 있다는 것은 그런 아리엔의 상황에 비추어서 여러 가지로 의미심장하다. 로란이 자신의 꿈을 현실로 부지불식간에 일구어내는 사람이라면, 아리엔은 아무리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상상하고 꿈꾸는 것을 멈추지 않는 사람이다. 바로 그 상상이 아리엔을 위험에 빠뜨리기도 하지만, 결국 아리엔이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게 하는 핵심적 동력이 된다.


 

"아리엔은 계속 '당해'. 이용당하고 싶지 않아서, 오로지 스스로를 위해서 도망도 가고 마동기관도 훔치는데, 그것마저도 아리엔을 이용하려고 하는 나쁜 마법사 엘드레드가 따라붙었죠. 그 나쁜 마법사의 적이라고 하면서 따라붙은 리산드로스는 이번엔 다 없던 일로 해주고 다시 학교로 돌려보내주겠다고 해요."

 

"그렇죠. 너의 모든 선택을 내가 그냥 다 지우겠다는 거죠."

 

"그렇죠. 그런데 그걸 다 이겨내죠. 자신의 처지에서 최소한 자신이 생각하기에는 더 나은 것을 계속 선택했어요. 자기 머릿속에 가장 큰 압력이 들어있는데도 그것마저 이겨내고요."

 

아리엔은 깨달았다. 자기가 지금까지 계속 해 온 것, 가장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리엔은 케인이 이야기해 준, 아를란드의 공주를 떠올렸다. 공주는 반짝이는 갑옷을 입고 불타는 검을 들고서 용의 등에 타고 있다. 생김새는 왠지 자기를 닮았다. 상상 속의 공주가, 들고 있던 검을 내 주었다. (246p)

 

아리엔에게는 세계를 되찾겠다는 욕망이나 대의같은 건 없다. 아리엔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세계". 우리 대부분, 평범한 사람들이 그렇듯이 아리엔은 자신을 지키고 싶어하고, 스스로 결정하고 싶어하며, 선량하다. 세 주인공 중 아리엔은 가장 민중에 근접한 인물이다. 자기 삶에 대한 통제와 결정권을 가지고 싶어하는 아주 단순한 욕망. 물론 우리 대부분이 실현하고 있지 못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리엔이 세상을 돌파해 내는 것은 민중의 무구함과 상상력이다. 자기 자신을 구하기 위해서 세상을 구해내고, 아리엔은 통제력을 되찾는다. 원형적인 신화에 나올 법한 이야기이며 동시에 아주 사소하고 작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캐릭터 셋. 케인

 

케인은 사색적인 인물이다. 로란과 아리엔이 그녀들의 행동, 벌어진 현실에 그녀들이 어떻게 대응하는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케인은 움직이기 전에 오래 생각하는 사람이다. 많은 것을 듣고 추적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는 떠난 연인 그레첸이 어째서 죽었는지 알고 싶기 때문이다. 그레첸의 복수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알기 위해선 움직이기 이전에 많이 생각할 수밖에 없다.

 

"트위터에서 탐정래빗님께서 이런 질문을 해 주셨어요. ' 케인에 대해 쓰실 때, 떠올리신 탐정소설이 있으신지. 있다면 어떤 책인지 궁금합니다.'"

 

"저는 일단 대실 해미트를 좋아하고요. 제일 좋아하는 작가는 윌리엄 깁슨인데, 그 사람도 해미트 계보를 그대로 이어받았어요. 저는 항상 깁슨을 흉내내려고 해요. 그러다보니까 저 사람은 어디서 배웠나를 찾아보기도 했거든요. 케인은 제가 하드보일드 탐정소설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에서 많이 빌려온 캐릭터에요. 다만, 메르시아의 별 자체가 탐정소설은 아니니까 빌려온다고 해도 한계가 있기는 하죠. 그래서 딱 어느 한 작품을 참조했다기보다는 '하드보일드 주인공 같은 모양새'를 맞춰보려고 했어요.

 

이를테면 - < 브릭 >이라는 영화 아세요? 고등학생들이 나오는 하이틴 영화인데 - 배경만 고등학교고 사실은 하드보일드 서사예요. 하드보일드 영화에 나오는 외부의 거부할 수 없는 압력처럼 등장하는 '경찰'이 여기서는 교장과 교감이고, 갱 보스는 고등학교에서 와일드한 애. 주인공이 집에 찾아가면 엄마가 학교에 주스와 과자를 가지고 오는. 영화 시작 부분에 주인공의 전 여자친구한테 전화가 오는데, 그 다음날 시체로 발견돼요."

 

"고등학생 영환데?!"

 

", 미국 고등학교는 그럴 법도 하니까요. 그걸 찾아가는 얘기에요."

 

"전형적인 하드보일드 구조네요."

 

". 내 예전 여자친구가 죽었어. 왜 죽었나 파헤쳐보자. 그런 캐릭터는 항상 좋아해요. 하지만 케인은 계속 그렇게 갈 수는 없죠. 바뀌어야 되거든요. 범인이 누군지 안 단계에서 끝날 수가 없는 게, 기본적으로 하드보일드 탐정소설에서 피해자는 그냥 피해자에요. 피해자라는 물건이에요. 그냥 시체에요. 그게 주인공의 옛날 여자친구였다던가 하는 건 그냥……"


"기폭제죠."


". 그냥 동기를 부여하기 위한 거예요. 그런데 그 동기로 시작을 했어도 케인은 그렇게 될 수가 없는 게, 케인의 서사도 케인이 왕이 되는 얘기거든요."

 

"……?"

 

"죽은 그레첸의 자리를 이어받아야 해요. 그레첸은 자기가 보호하고 있던 사람들이 그 테러로 죽거나 다치거나 손해를 볼 거기 때문에 반대했다가 죽은 거예요. 그러니까 케인은 그걸 이어받아야 돼요."

 

"어둠의 왕이 된다는 거군요."

 

"그렇죠. 대부에서 비토 콜리오네처럼 될 지 모르죠."

 

장례식에 왔던 아를란드 사람들의 부탁대로 그레첸의 묘지에 좋은 묘비를 세워야 한다. 글라디스의 사무소를 정찰해 준 아야나와 아이들에게 돈을 더 주어야 한다. 그레첸이 그간 돕던 사람들을 찾아가서, 그레첸이 하던 일을 계속해야 한다. 새 직장을 찾아야 한다. 첩보청의 세 사람도 후에 다시 볼 일이 있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앞으로는 바쁜 나날이 될 것이다. (312p) 


나름대로 하드보일드 주인공다운 결말이다.

 




 

", 그러고보니까 트위터에서 온 질문 중에 왜 소설 속에 파티가 없느냐는 이야기도 있던데. 사실 저는 케인이 제일 처음 아리엔을 도와줬을 때, 여기에서 듀오가 되나? 했는데 스쳐지나서 가버리더라구요."

 

"저는 처음에 생각했을 땐 같이 가는 걸로 생각을 했었어요. 같이 아를란드로 가는 걸로 처음에는 생각을 하고 플랜을 잡았었는데, 쓰고서 처랑 얘기도 해 보고 그러니까 이게 그러면 안 되는 거예요. 그러면 주도권이 둘 중에 한 명한테 가요. 엘드레드한테 가던지 케인한테 가던지. 아리엔이 주체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이유가, 자기 머릿속에 있는 마법사를 안 믿기 때문이잖아요. 엘드레드를 믿고 있으면 시키는대로만 하면 되죠. 그런데 케인이 같이 가면 얘는 의심 많고, 관찰력 있고, 똑똑하고, 그러니까."

 

", 케인이 머리가 되고 아리엔이 마법을 쓰는 수족이 되어버리는구나."

 

", 그렇죠. 그러면 아리엔이 애초에 등장한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메르시아의 별>이 가진 주된 특징 중 하나는 바로 여성캐릭터의 활약일 것이다. 가장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존재들은 여성들이며, 가장 사색적인 존재는 남성이다. 남성은 뒤에 있고, 여성은 활동한다. <이갈리아의 딸들> 같은 형태로 뒤집혀 있는 '페미니즘' 소설은 아니지만, <메르시아의 별> 속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모두 적극적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하며, 행동하고 사고한다. 아를란드가 되찾은 왕은 여성이고, 아를란드의 마법사도, 최고대신도 모두 여성이다. 나는 이 점이 '굳이 물어봐야 될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 싫었기 때문에 작가에게 이 질문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굳이 한 번 더 짚어주고 싶다. 여성에게 주어지는 롤이 이렇게 다양할 수 있다고.

 

"하지만 아리엔이랑 엘드레드, 화룡이랑 로란은 파티라고도 볼 수 있는 거 아닌가요?"

 

"마이클 무어콕의 <엘릭 사가>에 보면, 주인공 엘릭이 스톰브링거라는 마검을 갖고 다녀요. 영혼을 빨아먹는 마검인데, 엘릭은 이 무기에서 도망가려고 노력하지만 결국 도망가지 못하죠. 그런 관계그러니까, 저도 지금까진 생각을 못 했는데 엘드레드와 아리엔은 저주받은 아이템과 주인공의 관계 아닐까요."





연기 속에서 무언가 검붉은 것이 엄청난 속도로 튀어나왔다. 왼쪽 눈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화룡이었다. 등에 튀어나온 비늘덮인 돌기 하나를 꽉 껴안고 있는 사람이 있다. 아리엔이다. 허리에는 우르마스를 찼다. 이리로 날아오고 있다. 타고 있는 사람이 버틸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빠르다 했는데, 날개가 한 번 펄럭이더니 속도가 더 오른다.

클라리오스가 몸을 빙글 돌렸다. 로란은 마동기관실의 뚜껑 옆에 있는 손잡이에 매달렸다. 시선은 화룡에게서 떼지 않았다. (329p)

 

<메르시아의 별> 속에 등장하는 문장들은 빠르다. 

글 자체도 속도감 있게 읽히는 서사지만, 그렇게 술술 읽혀내려가는 데에는 속도감 있는 문장 덕도 적지 않을 것이다. 특히 액션과 전투신이 등장할 때면 문장은 내달리는 데에 더욱 박차를 가한다. 숨 막히는 느낌으로 소설을 읽어 내려간 데에는 분명히 그 원인이 있다. 숨도 제대로 못 쉬고 헐떡이면서 한 장을 다 지나치고 나서, 엄청나게 쫄보가 되어 다음 장으로 넘어갔더니 문제가 쉽사리 해결되어서 가슴이 턱턱 내려앉는 경험을 자주 하며 읽어야 했다.

 

"문장에 수사가 별로 없고, 인물의 행동 중심으로 서술되더라구요. 행동과 행동이 연결되니까 속도가 빠르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그래서 전투신은 더 박진감 있어진 것 같고요."

 

"전투 부분에서는 그렇게 쓰여지더라구요. 빨리 쓰여요. 원래 형용사나 부사를 별로 좋아하질 않아요. 시점 캐릭터의 감정보다는 생체 반응을 쓰는 걸 선호해요. 화가 났다고 안 하고, 이가 악물렸다고 한다거나. 슬프다고 안 하고, 눈물이 찔끔 난다고 한다거나."


 

"생각해보니, 정서를 묘사하려면 속도감이 빨리 나긴 어려울 수도 있겠네요."

 

"저는 감정은 글씨로 쓰이기보다는 글씨 사이에 있으면 더 좋다고 생각해서요."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보다는 얼굴을 찌푸렸다-가 좋으시다는 거죠?"

 

", 우울했다는 더 싫고."

 

그러면 이제 이 문장이 만들어낸 심장의 '쫄깃쫄깃함'에 대해서 얘기해야 할 차례다.

 

*

 

"저는 사실 보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재밌었는데 이야기가 이렇게 끝까지 밀려갔다가 다음 장에서 고무줄 놓듯이 풀리는 장치들이 있잖아요. 용이 엘드레드에게 사로잡혔을 때, 케인이 죽기 직전까지 갔을 때처럼. 저는 정서적으로 몰입이 심한 편이라 이런 쫄깃쫄깃하고 극적인 부분들이 정말…… , 나빠요. 정말."

 

"사실 저도 '이래도 되나?' 하면서 썼어요. 그런데 조지 R. R. 마틴은 매 챕터를 그렇게 끝내더라구요."

 

……이게 다 조지 R. R. 마틴 때문이다.

 



 

소설 내부에서 '메르시아의 별'이 무엇인지는 명확하게 나오지 않는다. '메르시아의 별' 때문에 멸망한 메르시아의 나라가 등장하고, 메르시아의 별이 두렵지 않느냐는 호통이 등장할 뿐.

 

"메르시아의 별이라는 병기에 대해서는 들어보셨습니까?"

"물론이죠. 모르는 사람이 드물지 않을까요? 저 자신은 그런 게 있다는 것을 완전히 믿기가 어렵습니다만."

저항하면 나라 자체를 없애버린다는, 제국의 궁극 병기. 어떻게 생겼는지, 어떻게 사용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소문이 무성할 뿐이다. 그러나 존재한다는 것만은 모두가 믿고 있다. (104p)

 

"메르시아라는 나라가 저기 멀리 따로 있잖아요. 백 년 전에 거기가 독립선언을 했다가 메르시아의 별이라는 거에 맞아 사막이 됐다. 그래서 제국에서는 심하게 반항하는 속국은 군대 파견조차 안 하고 박살을 낼 수가 있다는 거예요. 중간에 엘드레드가 얘기하잖아요. 메르시아는 독립 선언 같은 거 한 적도 없고, 메르시아의 별은 그저 사호(死號). 하지만 진실은 알 수가 없죠. 기본적으로는 핵이죠."

 

"저도 핵에 가깝다고 생각은 했어요. 게임 <문명>에서 맨하탄 프로젝트 완성해서 핵 떨어뜨리면 도시가 없어지는 것처럼. 하지만 이게 제목이니까요."

 

"쓰고보니 저도 왜 제목이라고 했나 싶기도 한데……. 이게 제국의 '궁극적인 무력'의 상징이잖아요."

 

"제국의 힘이라고 '믿는 것'이라는 뜻인가요?"

 

"그렇죠. 지금까지 인류 역사에 핵무기가 사용된 건 한 번 밖에 없어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죠. 그것도 전세를 역전시키기 위해서 쓴 건 아니예요. 실험으로 떨어뜨렸단 얘기가 설득력이 있어 보일 정도로요. 상륙전 하면 수많은 미군 병사들이 죽는다고는 하지만 핵무기 때문에 수많은 일본 민간인들이 죽었어요. 그 이후로 아무도 안 썼죠.

 

국제사회는 이스라엘이 핵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핵무기를 갖고 있다고 말한 적이 없어요. 적어도 이제 이스라엘에 쳐들어갈 나라는 없어요."

 

권력은 타자를 제어할 수 있는 힘이다. 그렇기에 권력은 타자를 제어해서 점점 더 강성해 질 수 있다. 민중의 눈을 장악하면 귀를 장악할 수 있고 사고를 장악할 수 있다. 공포를 느끼게 할 수 있고 안정을 느끼게 할 수 있고 자유를 박탈할 수도 있다. 사람들의 손발을 묶는 것보다 공포를 느끼게 하는 것이 근원적이고, 압도적인 힘을 보여주는 것보다 압도적인 힘이 있다고 믿게 만드는 것이 강력하다.

 

권력에게는 자기 자신을 유지하려는 본능이 있다. 누구라도 권력을 가지게 된다면 그 권력의 속성에 복속되게 된다. 권력이 자기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팽창할 수밖에 없다. 통제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도. 바로 그 권력의 본질적인 속성이 '메르시아의 별'인 셈이다. 그것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와 무관하게. 저항하지 않는 한 권력의 팽창은 막을 수 없다.

 



 

"차기작 구상을 알려주세요."

 

"사장님이 2권 써달라고…… 써야죠…….

 

2권에서는 아리엔이 메르시아에 가요. 그래서 메르시아의 별이 뭔지를 알아달라고 로란이 부탁을 했기 때문에. 그리고 거기서 엘프들을 만나요. 아리엔은 제국에서 자랐잖아요. 제국에서 교육을 받았단 말이에요. 지금은 버리고 와 있지만 그래도 생각하는 방식이 제국사람이죠. 이 엘프들은 인간이 아니에요. 짐승보다 조금 나은 수준으로 생각이 되죠."

 

"흔히 말하는 '호모 사케르'네요."

 

", 집단 단위의 호모 사케르죠. 영국 역사에는 하드리아누스 방벽이 있죠. 남쪽 사람들은 좀 다스릴만하다고 생각해서 로마식 마을도 짓고, 교역도 하고, 창칼로 협박해서 일도 시키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그 위에 있는 픽트인들에 대해서는 다스릴 가치도 없다고 벽을 쌓았죠. 엘프는 아니지만 <메르시아의 별>에서도 등장해요. 아를란드 북쪽에 있는 레돈이라는 나라 남쪽은 지배를 하고 있지만 북쪽은 정벌대상이죠. 이들은 그만큼의 힘도 없어요. 아예 인간이 아니니까.

 

하나 더 얘기하자면, 200년 전의 메르시아를 그리고 싶어요. 엘드레드가 아직 멀쩡한 상태로 메르시아에 있고, 리산드로스가 처음 갔을 때. 리산드로스는 물론 제국의 정복 사업의 일환으로 간 거죠. 여기서는 시점을 리산드로스의 아들인 아기 클레톤의 어머니 시점으로 쓰려고 해요. 클레톤의 어머니는 당시 메르시아에서 폭군 엘드레드에게 저항하던 사람이예요."

 

"그러니까, 정복하러 간 제국주의자랑 현지의 레지스탕스가 그 사이에서 아이를 낳았다는 거죠?"

 


나는 이 타이밍에서 '말린체'를 떠올렸는데, 순간 말린체의 이름이 기억 나지 않아서 나중에 얘기해준다고 하고서는 깜빡하고 김성일 작가에게 얘기를 안 했다.

 

지금 언급하자면 말린체는 마야의 여자 노예다. 언어적 재능이 뛰어나고 무척 총명한 여성이었다고 한다. 그녀가 노예로 팔려가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이 있다. 아즈텍에게 정복당한 국가의 (국민이었다가) 노예가 되었다고도 하고, 여성에게 상속시키고 싶지 않았던 그녀의 부모가 그녀를 팔아넘겼다고도 한다. 여하간 그녀는 노예의 신분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그녀에게 자신의 삶을 통째로 바꿀 기회가 찾아온다. 코르테스에게 '화평을 위한' 노예로 팔려간 것이다. 그녀는 코르테스의 아이를 낳는다. 그녀는 아즈텍을 점령하는 데에 가장 많은 정보를 줬을 뿐만 아니라, 아즈텍 황제를 코르테스의 인질로 만드는 데에 혁혁한 공을 세운 코르테스의 '통역가'였다. 그리고 말린체라는 이름은 남아메리카 사람들에게 배신자, 나라를 팔아먹은 창부의 상징이 되었다.



인류는 역사를 바꿔왔다. 역사는 우연의 집합처럼 보이지만, 때로는 일정한 프로세스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그 프로세스가 발현되는 자장은 우연으로 발생하기도 한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한 누구라도 우리가 모두 익숙하게 접해왔던, '역사'의 흐름에 푹 빠져들어 읽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모름지기 환상은 현실의 거울인 법이고, 이 소설 속에 있는 인물들은 생생하게 살아있다. 잘 만든 인물들이 흔히 그렇듯이 나는 소설 밖에서도 이 인물들이 살아있으리라고 믿는다. 그런 인물들은 작가의 세계를 넘어서게 마련이다. 사실 내 마음 속에도 로란이 살게 되었다.

 



<복수자>, <추적자>, <도망자>.

영화 놈놈놈과는 무관하고요,

‘공주를 자처하는 검술가’, ‘용’, ‘독립’, ‘특수마법’, ‘마동기관’, ‘음모’, ‘첩보’ 등의 키워드를 가진 정통 판타지입니다.

복수하고 추적하고 도망가던 중에 하나로 모여 커다란 흐름을 만들어내는 이야기입니다.



주의사항

1. 용 싫어요!!!! 

2. 공주도 싫어요!!!!!

3. 수동적인 캐릭터가 좋아요!!!!!

4. 멋있는 캐릭터가 나오면 두드러기가 나요!!!!!!! 싫어!

5. 사이다는 목 따가워서 별로에요!!!!!! 싫다고!

6. 판타지 안 봐요!!!!! 안 돼!


위의 주의사항에 걸리는 분들께서는 아쉽지만 본 서적과 맞지 않사오니

여행서적 및 참고서, 자기계발서 코너 등으로 발걸음을 돌려주세요.




이야기 속 세상은 어쩌면 평화로울 수도 있습니다.

제국 강력한 마법비할 데 없는 병력으로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어쩌면 세상은 좀 더 발전했고, 풍요로워졌으며

무지몽매하던 사람들이 교육을 받게 되었고, 보다 앞선 문명을 받아들여

편의시설을 일상적으로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성장은 제국의 압정 아래 이루어졌습니다.

제국의 지배를 통해 생활수준이 올라갔을 수도 있으나, 정작 지배당한 속국민의 삶은 제국민과 결코 같지 않습니다.


마력이 있으면 열두 살짜리라 해도 가족과 헤어져 제국 소속의 마법학교에 들어가 평생 나올 수 없으며,

툭하면 속국민이라고 멸시당하기 십상입니다.

자신들의 뿌리가 되는 나라가 있었으나 그 왕은 죽임을 당한 지 오래이기도 합니다.

자치는 불가능하고, 속국민은 숨을 쉬듯 수탈당합니다.


속국민이라는 이유만으로 억눌리고 짓밟히던 그들은

이윽고 저마다의 동기를 가지고 풍선에 바람이 들어가듯,

스스로를 팽창시키며 위대해집니다.

어쩌면 평화로울 수도 있는 세상을 뒤집어엎으면서.

그 여정의 상세 과정을 담은 책입니다.




짧고 가볍게 주연 캐릭터 삼인방부터 소개하겠습니다.



로란, 가족의 복수를 위해 나선 자.

직업 : 검사

지위 : 자칭 공주였으나 켠 김에 왕까지.

직위 취득일자 : 본서 10페이지. 

출생 : 아를란드.

외양적 특징 : 검붉은 머리카락, 한시적으로 붉은 비늘이 돋기도 함. 간지 남.

가족 : 남편(R.I.P), 딸(R.I.P) ㅜㅜ

*결혼대행업체 문의 사절. 전단지 및 스팸 금지.

좋아하는 것 : 무례하지 않은 사람, 용이한 은신처

싫어하는 것 : 제국, 압정, 마동병기, 시정잡배

사이트 : 장밋빛깔 우리전하(팬카페), 

아를란드닷컴(→친절민원→온라인알현에서 전하께 직접 메시지를 남기실 수 있습니다. 상세사항은 홈페이지에서.)

*저서 : ‘생로병사의 비밀은 외눈에 있다’ ‘여보게 화산 갈 땐 뭘 가지고 가나’ ‘아, 만 닢 따위 됐으니까 모가지나 주세요’ 외 다수



케인, 은인 겸 연인의 살인자와 그 이유를 찾고자 거리를 누비는 자.


직업 : 첩보청 외주 첩보원

주요 경력 사항 및 근속 기간 : 기름 가게 점원 5년차.

출생 : 아를란드.

현 거주지 : 제국의 수도.

특기 : 거짓말 탐지, 정보수집, 올리브 기름 신선도 측정

노래방 18번 : ‘Do You Hear The People Sing’, ‘누난 내 여자니까’.

기억에 남는 영화 : 밀정, 인디펜던스 데이.

한 마디 : (재)취업은 나의 것.

맹점 : 안경남 콘셉트를 지키려면 그만 굴러야 하는데 그럴 날이 요원하다.



아리엔, 제국의 기밀을 안고 제뜻대로 살고 죽기 위해 도망가는 자.


직업 : 탈주닌자마법사.

출생 : 아를란드.

취미 : 놀*와 마이홈, 심*, 마인*래프트 등.

특기 : 아주 뛰어난 상상력.

경험으로 체득한 인생조언 : 꼰대의 말은 한 귀로도 듣지 말아야 한다.

장점 : 자기를 죽이려는 사람을 역으로 해치운 뒤 여리디여린 소녀심으로 땅굴 파고 들어가고 그런 거 없음.

눈앞에 펼쳐질 미래를 읽지 못하고 미숙할지언정 선택에 망설임이 없음.

요새 많이 나오는 소패 사패 아님. 한 마디로 거물예정자.

근래의 고민 : 시집도 안 갔는데 아이가 생겨버렸다. 그나마 다행히 울지도 보채지도 않는다.

더불어 여행길에 휴대(?)가 손쉽기까지 한데 안 좋은 건 독립 예정이 전무하다는 점.

최근에 느꼈던 아이러니 : 내 뜻대로 죽지 못할까 두려워 탈출한 순간부터 가장 생생하게 살아있음을 느낌.





캐릭터 소개는 이 정도로 하고, 이어서 줄거리를 간략하게 소개해 보겠습니다.


저들의 공통점은 ‘움직여야 할 동기’와 ‘기동성’ 그리고 ‘제국의 속국인 아를란드 태생이라는 딱지’를 가졌다는 점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아래와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느 날 갑자기-

① 억울하게 가족을 잃는다.


② 어린 자신을 주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고 말을 가르쳐 준 친구가 난데없이 시체로 발견된다.


③ 머릿속에서 어떤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목소리는 자신이 두려워하는 것을 피할 방법을 알려주겠다고 속삭인다.



썩 유쾌한 상황들은 아닙니다.

우리의 주인공들은 아래와 같이 움직입니다.



① : 복수자 ‘로란’은 폭정을 일삼는 총독에게 남편과 딸을 잃고, 복수를 하고자 화산의 용의 힘을 빌리려 합니다. 


② : 추적자 ‘케인’은 중요하게 할 이야기가 있다던 은인 겸 친구 겸 연인이 느닷없이 강에서 시체로 발견되고,

자신 또한 어째서인지 추격을 당하게 되자 살인자와 동기를 찾아 나섭니다.


③ : 도망자 ‘아리엔’은 죽은 뒤, 자신의 시체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마동기관이라는 물건이 되리라는 사실에 두려워합니다.

이는 예정된 미래이자 기정사실입니다. 그런 아리엔에게 어느 날부터 어떤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합니다.

목소리는 아리엔에게 그 미래에서 벗어날 방법을 알려주며, 마법학교를 탈주하도록 종용합니다.


여기에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언뜻 봐서는 크게 겹치지 않는 인물들이지만 그들이 움직이겠다고 결심을 하고 한 걸음 내디딘 순간부터,

그들은 하나의 목적을 위해 한 점으로 모이게 됩니다.



책의 제목인 ‘메르시아의 별’에 대해서도 짧게 소개해 보겠습니다.

이것은 발달된 문명을 가져왔으나 한편으로는 폭군인 ‘제국’이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불리는 ‘무언가’입니다.


과거 ‘메르시아’는 제국의 속국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독립을 선언했다가 제국에 의해, 마동기관 ‘메르시아의 별’에 의해 나라 하나가 통째로 사라졌죠.

지금은 사막이 되어, 예전에 사람이 살았던 흔적조차도 남아있지 않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제국이 보유한, 속국에 대한 가장 강력한 제어 장치입니다. 혼자서만 메테오급 스크롤 같은 전설템을 보유한 셈이죠.

한 번 일어난 일은 두 번, 세 번도 일어날 수 있다고들 하는 데다, 그 정체까지 모호한 ‘메르시아의 별’이 왜 이 이야기의 제목일까? 

그 점은 책을 보시고 직접 판단해 주세요.



또, 책 속의 배경은 전혀 다른 세상이지만 현실과 겹치는 부분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판타지 소설을 거의 접하지 않은 초급자도 쉽게 읽으실 수 있습니다.


또한 판타지 소설에 익숙하신 중, 상급자가 읽기에도 흥미로운 요소가 잘 준비되어 있습니다.

- 정통 판타지이면서도 단권으로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는 점,

- 마법의 방식이 매우 참신하다는 점

- 그리고 인물의 성별과 역할의 연관성에, 자칫 진부할 수도 있는 전통적인 채택 방식이 배제되었다는 점 등을 꼽고 싶습니다.



어떤 세계든 지배층과 피지배층은 존재합니다.

그리고 피지배층이 지배층의 압정과 폭력과 불통에 지쳐 들고 일어났을 때

우리는 그것이 현실의 이야기든 소설이든 드라마틱하다고 느낍니다.


다만 현실의 이야기는 새드 엔딩으로 이어지기가 쉽고, 지지부진해지기 일쑤죠.

반면에 소설이나 영화 속 혁명은 주인공들의 분투 끝에

 극적이고, 납득이 가며, 박수를 보내고 싶어지는 승리를 쟁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보고 싶어 하고, 또 원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이야기는 결국 사람과 삶에 관한 것이니까요.



드라마모험 그리고 카타르시스‘메르시아의 별’ 단 한 권에서 당신을 기다립니다★







사랑이여, 게 보여 줘



나는 아이폰 유저다. 아이폰에는 ‘자동완성’ 기능이라는 것이 있다. 

자동완성 기능은 불편해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끄고 쓰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다. 나는 아이폰 3부터 아이폰을 사용해서, 지금은 6s를 쓰고 있지만 한 번도 자동완성 기능을 끈 적이 없다. 자동완성 기능은 내가 이 기계와 교류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유일한 기능이기 때문이다. 


아이폰은 내가 자주 쓰는 말을 고려해서 오타들을 정정하고 내가 쓸 법한 말들로 만들어준다. 그러다보니 ‘수란먹어’를 ‘수렴해서’ 따위로 바꿔주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하지만, 나는 아이폰이 그런 실수를 할 때면 은근히 아이폰을 사랑스러워하곤 하는 것이다. 


내가 평소에 쓰는 말들을 다 기억하고 있는 귀여운 녀석. 

이것은 이를테면 김춘수의 <꽃> 같은 것이리라. 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너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는 발견. 내게로 와서 그때 ‘수렴하다’라는 단어를 배웠다는 깨달음.



물론 나도 안드로이드를 사랑한다. SF를 쓰는 사람치고 안드로이드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안드로이드에 대해 이야기 한다는 것은 가장 근접하게 인간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아이작 아시모프가 일찍이 우리에게 알려주었듯이.


양원영 작가가 직접 그린 <안드로이드라도 괜찮아>의 표지는 몹시 사랑스럽다. 도트로 이루어진 안드로이드의 실루엣은 빗자루를 들고 있고, 인간은 안드로이드에게 꽃을 건네고 있다. 우리는 빵 뿐만 아니라 장미가 필요하다고, 1900년대 여성 노동자들이 외쳤던가. 


인간에게 ‘빵(생활에 꼭 필요한 것들)’을 제공해주는 안드로이드에게 인간이 ‘꽃(필수적이진 않더라도 존엄한 것들)’을 건네는 상황.




항구도시 부산서 서울까지 올라온 양원영 작가와 나는 뜬금없이 망원동에서 스시(…)를 함께 먹으며 대화를 나눴다. 바다 냄새 맡으면서 사는 사람에게 서울의 생선이라니!





이서영: “우리가 처음 안드로이드를 떠올렸을 때 생각하게 되는 건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할’ 같은 애들이잖아요. ‘그래, 내가 계산을 잘 해보니까 인간을 다 죽여버려야겠어’ 같은 생각을 하는.”


인간이 만들어 낸 안드로이드를 공포와 디스토피아의 기제로 사용하게 만드는 것은 그런 것이다. 

인간은 자신이 할 수 없는 완벽한 계산을 안드로이드가 하기를 기대한다. 그렇게 인간이 도무지 다다를 수 없는 완벽한 계산의 세계에 진입한 인간들은, 그 완벽한 계산 끝에 인간을 해하는 결론으로 도달한다. 안드로이드가 등장하는 소설의 한 전형적 형태다.


그런데 이 소설 속의 안드로이드들은 굉장히 사람같거든요. 생각하는 형태가 사람같아요. 별로 기계로서 사고하지 않는다는 느낌.”


<디스토피아를 찾아서>의 화자는 ‘생각’을 하게 된 다음, 자신의 주인을 ‘염려’하여 머나먼 시간여행의 길을 떠난다. 이 안드로이드는 자신이 주인과 영원히 함께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으며, 자신과 주인의 삶이 별개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순전한 인간적 ‘생각’으로 주인을 염려한다. 이것을 인간이라면 ‘마음’이라고 불렀을 것이다.





양원영: “전 안드로이드가 감정을 가질 수 있다는 데에는 회의적이에요.”


생각지 못한 대답이었다.


“인간이 안드로이드가 감정이 있다고 믿을 수는 있겠죠. 믿고 그렇게 대해줄 수는 있겠죠. 그러니까 이건 투영의 문제예요. 내가 얘한테 뭘 투영하고 있는가. 내가 감정이 있다고 투영하면 있는 게 되는 거죠.







혼란스러울 텐데도 엄마가 힘들어할까 봐 언제나처럼 밝은 미주로 돌아와 주어서 고마워. 

부모를 위해야 한다는 프로그램 때문이라 자책하고 있니? 사람의 누군가를 위하는 마음도 저절로 샘솟지 않아. 

배우고, 가르치고, 살면서 체득한 시스템이지. 너는 그 과정을 생략하고 일찍부터 가졌을 뿐이야.

― <인생> 중에서


저는 안드로이드를 비어있는 그릇이라고 생각했고 그 안에 무엇을 집어넣을지는 인간인 화자들의 몫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모든 글들의 화자는 인간이거든요. 결국 인간인 ‘나’가 너희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느냐. 


그러니까 자기 모습을 보는 거예요. 내 모습을 보이는대로 투영하되 내가 원하는 것만을 비춰주는 거울인 셈이죠. 

연예인의 모습을 투영하면 연예인이 나오고 아버지를 바라면 나에게 아버지가 되어주었고. 어떤 의미로 보면 좀 섬뜩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네요.”


그렇게 말하고 양원영 작가는 웃었다.




나는 이 책에 대한 단평을 트위터에 가볍게 남긴 바가 있다.


“이 책은 사람을 매우 정직한 시선으로 사랑하면서, 동시에 사람의 세상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인상이다.”


작가의 의도가 인간의 애정, 집착, 온기, 혐오까지도 모두 투영해서 안드로이드라는 존재에 띄우려는 것이었다면, 인간의 삶에 대한 애정과 혐오를 동시에 느끼는 것도 그럴 법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소설은 결국 인간의 이야기지만, 이 소설 속 인간들이 안드로이드를 ‘이용’해서 자신의 삶의 빈 구석을 채워나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면 이 소설은 결국 안드로이드의 ‘마음’까지도 철저하게 ‘이용’해서 인간의 이야기를 서술한 셈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 소설 속 인간이라는 존재는 상당히 떨떠름해지고 말았다. 그러면 온통 안드로이드 얘기뿐인 이 소설 속에서 안드로이드란 대체 뭐지?






“저는 이세돌하고 알파고하고 붙었을 때 이세돌이 이기길 바랐어요.”


나는 조금 놀랐다. 물론 세간에서야 이세돌을 응원한 사람이 더 많았겠지만 내 주변의 SF 덕후들은 모두 알파고를 응원했으니까. 양원영 작가 자신의 말로는 이 소설을 SF라고 하면 부끄러워 죽을 것 같다고 하지만, 이 안드로이드 연작은 누가 봐도 어엿한 SF 아닌가.



“알파고는 어쨌든 인간을 위해 만들어졌다기보다는 대국을 위해 만들어진 거잖아요.

정서적으로 내가 교감하는 대상은 아니니까.

로봇청소기나 로봇개랑은 다르죠. 일반적인 컴퓨터에 대해서 애착은 없어요. 

냉정하게 말하자면 사람에게 희생하지 않는 이상은 별 감정을 가지진 않을 것 같아요.


단편집 속의 안드로이드들은 양원영 작가의 말대로 하나같이 애잔하기 그지없다.


<인조력시장만가(人造力市場輓歌)> 속의 모든 안드로이드들은 한결같이 자신의 주인을 걱정하고 기다린다. <최후의 고백>에서 안드로이드 제이는 주인을 사랑한다는 한 마디 말을 하기 위해 먼 시공간을 뛰어넘는다. 

그리고 <에필로그 : 청소로봇의 죄>에서는 기꺼이 자신의 사랑을 위해 죄값을 떠맡는다. 

하다못해 <천녀보살 신드롬>에서는 결론적으로 인간의 삶을 망가뜨려 버리고 만 ‘천녀보살’조차도 진심으로 인간을 생각하고 걱정했기 때문에 그런 결론으로 나아가게 된다.


“천녀보살의 인격모듈은 선생님이 마련한 안드로이드에 장착되어 무척 큰 시너지를 일으켰습니다. 


안드로이드의 우수한 기능이 더해져 기존 천녀보살의 부족했던 상황판단력을 보충하고 더 교묘하게 사람을 속일 수 있도록 발전한 것입니다. 선생님에 대한 집착은 안드로이드가 가진 주인을 위하는 속성을 인격모듈이 거스를 수 없어서 생겨났습니다. 


천녀보살은 나름대로 선생님을 지키고 돕고자 했습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 <천녀보살 신드롬> 중에서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기던 날, 나는 술에 취해서 대체 왜 내가 출근을 해야 하냐고 한탄을 했다. 

저렇게 훌륭한 AI가 있다면, 진작에 인간은 노동해서 해방되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만일 알파고가 나 대신에 여러 일들을 수행해주고 내 삶에 도움을 준다면, 나는 정말로 알파고를 많이 좋아하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로봇청소기를 산 사람들이 한결같이 로봇청소기를 귀여워하듯이.


하지만 인간이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할을 두려워하는 것은 인간을 위해 일하지 않기 때문은 아니다.





이서영: “알파고가 지는 과정을 보면서 저는 SF적인 영감을 좀 받았거든요. 

78수에서 어긋나기 시작하니까 완전히 이상한 방향으로 망가져 버리잖아요. 분명 안드로이드들도 그럴 수 있지 않을까요. 

기본적으로 인간의 도덕률이 입력되어 있기야 하겠지만, 인간의 도덕률이 알아볼 수 없는 모자이크로 보였을 때 완전히 망가져 버릴 수가 있지 않겠어요? 

이 소설 속의 안드로이드들은 어때요?”



양원영: “저도 그런 생각 많이 했어요. 자동주행 시스템에서 불가피할 때 사람을 칠 것인가 말 것인가 같은 문제들. 이런 건 답을 잘 못 내리겠어요. 

안드로이드를 만들면 그 윤리는 인간이 부여하겠죠.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처럼. 

그걸 생각하면 결국 적응하게 될 것 같아요. 

심지어 처음 기계가 도입되었을 때도 사람들은 디스토피아적 상상을 했어요. 사실 저는 그런 미래에 대한 부정적 예상에 반발하는 심리도 있었던 것 같아요.


설령 네 모든 판단이 내가 바라지 않는 형태가 될지라도, 그래도, 엄마는 네가 세상에 오래 남아주었으면 하고 바라.

이건 온전한 내 욕심이야.

― <인생> 중에서


박사는 어떻게든 미주의 삶을 제약하려고 한다. 기계가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영역을 넘어가 버린다면, 그때부터는 더 이상 기계를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도 명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주의 엄마인 희정은 다르다. 희정은 미주에게 진짜 ‘삶’을 살아가기를 요청한다. 

중요한 것은 이것 역시 인간의 욕망이며, 인간의 기대치라는 것이다. 인간은 꿈꾸는 것이 가능하고, 인간이 꿈을 꿀 때 안드로이드는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인간과 함께 무한에 다가서려고 시도할 수 있게 된다.


“분명 인간은 자기 이익을 위해서 안드로이드에게 제약을 걸겠죠. 하지만 그럼에도 그걸 넘어서길 바라는 사람이 있다면은 안드로이드는 넘어설 것 같아요.”






문탠로드로 언제부턴가 이름이 바뀐 달맞이 고개 아래의 작은 어촌마을인 미포에서부터 동해남부선 기찻길로 접어들었다.

평일 낮 시간대에는 걷는 사람도 드문드문했고 그마저도 곧 시야에서 사라졌다. 저 앞에 걷던 사람들이 정신차리면 어느 순간 없어지니 미희는 꼭 현실이 아닌 꿈의 길을 방황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 <최후의 고백> 중에서

연작 소설이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을 굳이 짚는다면 나는 미희와 제이 커플을 짚고 싶다. 

이들이 가장 많이 등장한다는 점도 그러하지만, 다른 여러 사람들 중에서도 안드로이드와 인간의 한계를 가장 많이 뛰어넘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제이와 미희는 단순히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도움을 주는 것을 뛰어넘어 ‘사랑’을 하고, 그것을 고백한다. 

시간과 모든 법칙을 뛰어넘어 제이는 미희에게 끝내 그것을 고백하고 만다.


제이가 그것을 고백하는 장소가 바로 부산의 송정역 근처다. 미희에게 그곳의 풍경은 지극히 일상적이다. 미희는 일상적인 불행을 살아가고 있는 여고생이다. 그 일상적인 풍경을 무너뜨리는 것이 미래에서 날아온 안드로이드 제이라는 점은 매우 의미가 깊다. 

사랑은 폭력적인 과정이다. 일상은 사랑에 의해 낭만적이고 폭력적으로 무너지고, 그 폐허 위에 사랑은 새로운 일상으로 자리를 잡는다. 미희는 제이에게 이미 그 폭력으로 위치하고, 제이는 과거의 미희를 찾아가서 일상의 풍경을 다시 그린다.


“부산은 항구도시죠. 항구는 사람들이 오고 가는 데고요. 

거기다가 관광도시니까 여름만 되면은 400만 명이 몰려왔다가 싹 빠져나가고 그러거든요. 

이러다보니까, 만나고 헤어지는 게 너무 자연스러워요. 떠난 사람은 떠나고, 남아있는 사람은 남아서 떠난 사람을 그리워하고. 떠나버리면 안 돌아오는 사람들이 많았죠. 6.25 사변의 마지막 피난처였고, 가장 중요한 무역항이었고.”


얼마 전에 서울의 이화마을에서는 관광객이 보고싶지 않다는 이유로 누군가 벽화를 없애버렸다. 부산이라는 도시에는 모두에게 ‘비일상’인 풍경을 ‘일상’으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뿌리를 깊이 내린 사람들은 끊임없이 파도가 왔다가 쓸려가는 장면을 목격해야만 한다. 그렇다고 해서 파도가 해송에 영향을 주지 않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제 친한 친구들은 다 상경을 했어요. 고등학교 친구들 중에 부산에 남아있는 애가 거의 없어요. 

저한테는 언제나 헤어짐의 도시였네요. 저는 익숙해졌어요. 떠나고 싶지 않아요. 

우스갯소리로 했던 말이 친구들한테 언제든 오고 싶을 때 오라고, 난 여기 있겠다고 말한 적이 있거든요.”


“미희, 당신을 사랑합니다. 미희,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어둠에서 빛이 폭발했다. 미희가 아득한 정신을 떨치고 눈을 떴을 때에는 여전히 휑한 선로 한가운데였다. 

저 멀리 송정 바닷가의 모습이 보였다. 비는 어느샌가 그쳤고, 산에서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이 온몸을 훑었다. 구름 사이에서 쏟아지는 빛이 바다를 황금빛으로 물들여 눈이 부셨다.

제이는 없었다. 그런 사람이 있었는지조차 의문이 들 만큼,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철길을 걸으며 중간중간 보이지 않던 사람들처럼 제이도 모습을 감췄다.

미희는 멍하게 나머지 길을 걸어 송정역에 도착했고, 길의 끝에서 그만 주저앉아 엉엉 울고 말았다.

― <최후의 고백> 중에서


소설 속에서 제이는 ‘당신을 귀찮게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상대방을 귀찮게 하고 싶은 마음, 상대방의 일상에 개입해서 그 프레임을 새롭게 구축하고 싶은 마음. 


인간과 인간이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그런 것이고, 무엇보다 사랑은 가장 격렬하게 그것이 일어나는 과정이다. 

제이가 미희에게 끝내 자신의 ‘생각’이 ‘사랑’이라는 감정임을 인정하게 되는 것은 그 맥락 위에 위치한다.





연인의 이야기를 실컷 했지만 누가 뭐라고 해도 이 소설집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이야기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오랜 시간을 거쳐서 소설 속의 사람들은 안드로이드를 가족으로 받아들인다. 


이미 일상 속에 젖어든 안드로이드들은 사람을 위해 복무하는 존재에서 사람에게 소중한 존재로 새로운 옷을 입는다.


“저 스티븐 스필버그예요. 가족 이야기 엄청나게 많이 써요. 근데 좀……
소위 ‘정상가족’ 이야기는 잘 안 쓰게 되더라고요. 친부모가 아니라거나, 유사가족이라거나. 안드로이드도 피가 섞인 존재는 아니잖아요. 반려동물들도 있고.”


“생각해 봐, 12년을 함께 살았어. 생판 모르는 남도 몇 년 같이 지내다 보면 가족처럼 여겨지기 마련인데.”

“사람하고 안드로이드가 같아? 아무리 정교해도 기계잖아.”

“사람이 아니더라도. 몇 년씩 써 온 물건에도 애정이 생기잖아. 왜 이름 붙여주고…….”

― <아빠의 우주여행> 중에서


사전적 의미로 가족이란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으로 규정된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그렇지 않은 수많은 가족들을 알고 있다. 

누군지 모르는 사람을 어머니로 생각하고 살기도 하고, 반려동물을 자식이라고 부르면서 살기도 한다. 

엄밀히 말하면 ‘시어머니·시아버지’야 말로 피 하나 안 섞인 ‘남’이 아니던가. 그리고 세영은 자신의 ‘아버지’로 호명되어 온 안드로이드를 아버지로 받아들인다. 


“사고방식에 따라 이런 이야기에 거부감을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해요. 

동물이라면 그래도 이해를 하겠지만, 살아있지도 않은 걸 가지고 연인처럼 대한다거나 엄마아빠처럼 따른다는 게 말이 되겠느냐고. 

주변 분들이 이거 보고 저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하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도 하기는 했어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라는 말에 대한 가장 좋은 대답은 ‘그럴 수도 있지’ 라는 것을 오래 깨달아 왔다. 

대부분은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릴 따름이다. 

가족의 문제로 얘기하자면, 반려동물 등록제가 그렇고, ‘사실혼’ 관계의 많은 커플들이 그렇다. 

한국 사회의 시선보다 조금 더 넓혀서 말하자면 성소수자 부부들이 그럴 것이고, 반려인 신분의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시대와 생각에 따라서 관념은 변화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남편의 부인과 소실들이 서로를 언니라고 부르는 사회를 살지 않았던가.


이전 내 고양이를 나는 남동생처럼 대했다. 그 고양이가 죽고 나서 지금 키우는 고양이를 아이처럼 대하고 있다. 내게 와서 그들이 서로 다른 의미로 정착하는 과정을 행복하고 가슴아프게 지났다. 안드로이드는 그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존재일 것이다. 


나는 지나간 시대를 살아왔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이 로봇 청소기를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며 쓰다듬는 경우에 대해 양원영 작가에게 말했다. 사실은 그 사람들도 얼마든지 다양한 가족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이미 다 알고 있을 거라고.





“가장 좋아하는 안드로이드는 뭐예요?”


조금은 고민을 할 줄 알았는데, 양원영 작가는 한 번의 고민도 없이 대답했다.


“게임 <크로노트리거>에 나오는 로보를 제일 좋아해요.”


나는 그 게임을 해 본 적이 없다. 로보와 피오나의 숲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는 눈물이 그렁해지고 말았다. 

이 인터뷰를 읽고 나서 게임을 해 볼 사람들을 위해 스포일러는 넣어두겠다. 양원영 작가의 입으로 들은 ‘로보’라는 안드로이드는 무척 사랑스러운 녀석이었다.







“다음 소설은 어떤 걸 구상하고 계세요?”


“지금 준비하고 있는 건 플라멩고 얘기를 쓸 거예요.”



아는 분들은 다 알겠지만, 양원영 작가는 훌륭한 춤꾼이다.


“스페인 내전 시기에 여자애 두 명이 플라멩고를 추는 이야기예요. 

집시 댄서 아가씨와 기타를 치는 어린 소녀. 두 소녀의 관계를 중심으로 쓸 생각이예요. 다른 예술을 쓰는 걸 좋아해요. 바이올리니스트와 오케스트라 이야기도 썼었고, 오페라이야기도 썼었고, 탱고 이야기도 썼었으니까, 이번엔 플라멩고로!”


포탄이 떨어지는 가운데 춤을 추는 이야기를 볼 수 있을 모양이었다.


“전란 시대에 예술이 겹쳐지면 엄청 포텐셜이 있는 것 같아요.”

“예술은 무망한 거고, 전란은 삶이 직결되는 건데 삶이 무망해지는 순간에 무망한 걸 끝까지 하고 있다니 쓸데없이 멋있어서!”





“이 책을 읽을, 읽은, 읽고 있는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양원영 작가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게 제일 싫다고.


그러다 돌아온 답변은 책 표지만큼 산뜻했다.


보고 행복하셨으면 좋겠어요. 뭘 투영해도 좋으니까 생각할 여지가 있고 행복한 방향이었었으면 좋겠어요. 저는 사람들이 밝아졌으면 해요,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다른 미래가 올 수도 있잖아요.


양원영 작가가 가장 사랑한다던 로보에 대해서 ‘조금’만 스포일러를 하자면, 

로보는 만들어진 목적과 다르게 주인공에게 다가온다. 원래는 좀 더 나쁜 목적을 위해 만들어졌지만, 세상을 구하는 팀의 일원이 된다. 

양원영 작가의 안드로이드들도 비슷하다. 

청소를 하는 로봇으로 만들어졌지만 연인이 되고, 일시적 순간을 위해 만들어졌지만 영속을 가지게 된다. 우리는 그것을 아름답다고 느끼지만, 사실 거기까지 가기에는 엄청난 행동과 결의들이 필요하다.



나는 이런 것들과 아주 비슷한 몇 가지 행위를 알고 있다. 


첫 번째는 소설을 쓴다는 것이다. 

그냥 흘러지나가는 여러 이야기들에 새로운 질서를 부여해서 의미 있는 하나의 서사로 구성하는 것. 그 안에서 독자와 작가는 자기 자신이 정말로 원했던 것이 무엇인지 찾아낸다.

두 번째는 사랑을 한다는 것이다.

양원영 작가는 안드로이드가 자신을 ‘투영’하는 매체라고 말했다. 인터뷰를 다 끝내고 나서, 나는 어쩌면 이것이 ‘투영’만은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내 안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나를 비춰주는 거울이라니, 그것은 오히려 ‘발견’에 가깝다. 내가 지금껏 보고 있지 못했던 나를 내 일상을 무너뜨리면서까지 찾아내 주는 것.


그것의 이름이 사랑이라는 건 세상이 다 안다.



소설 속에서 안드로이드 제이가 ‘생각했다’고 말할 때, 제이의 연인인 미희는 ‘느꼈다’고 말한다. 

우리는 모두 안드로이드가 아니기 때문에 서로의 진심을 수치화 할 수도 없고 계량할 수도 없다. 

하지만 이게 결국 인간의 이야기라는 것은 그런 말이다. 읽는 이가 행복하길 권하는 말이다.


서로의 진심을 추측하고 머뭇거리는 우리들 모두에게, 사랑해도 괜찮다고. 

이렇게 안드로이드처럼 서로를 서로에게 보여주면서. 오늘도 내 아이폰은 내가 치려고 했던 말을, 내가 자주 입력했던 말로 변환해 준다. 


나도 네가 왜 그러는지 다 알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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