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야 지금부터 내가 하는 이야기는 사실이다 하나에서 열까지 틀림없는 진실이다 나도 내가 보고 들은 모든 것이 차마 믿을 수 없고 믿고 싶지도 않지만 안타깝게도 이 모두 이미 일어난 일이다 친구야 어쩌면 좋으냐 나는 너는 그 아이는 우리는 모두 음모에 갇혔다 음모에 갇히고 말았단 말이다 도무지 헤어날 수 없는 헤어에 갇혔단 말이다 이 모든 말이 진담이라니 나부터가 어이가 없으나 이 모두가 사실이니 어쩌겠느냐 


그 아이는 내 학생이다 아직 어린 나이에 걸맞게 자신을 과신하고 자신 외의 모든 사람을 불신하지만 그래도 현명한 아이다 왜냐하면 나는 그리고 너는 자신을 불신하고 남들을 과신하니 어찌 보면 셈이 맞아떨어지는 셈이 아니냐 그런 점에서든 아닌 점에서든 그 아이는 현명하다 이도 내가 나 자신을 불신하고 그 아이를 과신하는 탓일지 모르나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는 점만으로도 그 아이가 현명한 아이라는 것은 불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 아이는 내 학생이지만 학생이 아니기도 하다 나는 나에게 그 아이에게 하나라도 가르쳐줄 무언가가 있다고는 차마 말하지 못하겠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그저 평범한 중학생일 것이다 짧은 숏커트에 활발하게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그 아이의 모습은 그저 평범하다 누군가와는 다투고 누군가와는 즐겁다 그러나 교단 위에 서서 나를 응시하거나 무시하는 반학생들을 훑어보다보면 그 아이가 있는 곳에서 내 눈은 예상치 못한 계단 한 단을 밟듯 헛발을 차고는 한다 나는 몇 번이고 심장을 부여잡고 심호흡을 하고 다시 그 아이를 관찰하려 하지만 그렇다 친구야 나는 한 번도 그 만용 어린 시도에 성공하지 못했다 

모든 것의 시작은 그 아이의 한 마디로부터다 그 아이의 한 마디로부터 내 모든 것은 끝났다 그 아이가 나를 방과 후 교실로 불러냈을 때 나는 많은 것을 각오해야 했다 나의 과잉된 충성심이 그 아이에게 부끄러운 양태로 발현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수많은 제약과 절제를 다짐해야 했다 판사의 선고를 기다리는 죄인의 심정으로 그 아이를 기다려야 했다 백 초 같은 백 년이 지나야 했다 

그 아이가 교실로 들어왔다 교복을 입었지만 그 누구와도 달라 보였다 날카롭게 그어진 눈썹에 그 아이의 시야가 가리키는 것 전부가 조각날 것이다 나는 기립하였고 그 아이는 모든 것을 끝낸 그 선언을 입에 잠시 머금었다 뱉어내었다 


선생님 

음모가 자라고 있어요 

그때 나의 머릿속은 복마전이었다 지옥의 모든 악마들이 그때만은 지옥 불구덩이 속이 아닌 나의 머릿속에서 수많은 음탕한 짐승과 죄인들을 벌주었을 것이다 나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단어의 수만큼이나 눈꺼풀을 깜빡인 뒤에야 나 자신이 임용고시를 준비하면서 초중고생을 위한 성교육교과과정과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일상적 발언들에 대한 주의사항을 배웠음을 기억해냈지만 그 내용은 단 하나도 기억해내지 못했으니 모든 것이 무용지물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나의 혼란은 무시되고 그 아이는 말을 이어 나갔다 


은밀히 냄새를 풍기고 있죠


나의 침묵을 이해의 표시로 보았는지 그 아이는 음모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느껴지지 않으세요? 


중학생의 당돌함을 상대해야 할 교사의 권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그 아이의 맹랑한 말 속에 장난기라도 있길 기대했으나 그 굳은 표정에서는 그 비석처럼 차갑고 굳은 표정에서는 하나의 선고만을 읽을 수 있었다 음모가 자라고 있다는 그 선언만을 말이다 


세상은 멸망할 거예요 

이 음모에 집어삼켜져서요


친구야 그 당시의 나의 표정을 상상해보아라 아마 그때의 나는 아마 지금의 네가 지은 그 표정을 짓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 음모는 음모였다 그러나 당시 나는 아직 그 음모를 확인한 것은 확신한 것은 아니다 나는 그제야 그 아이에게 하나의 대답을 건넸다 


꾸……꾸렉?


너는 그날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평소보다 한 병의 술을 더 먹고는 요즘 학생들의 속은 도무지 알아먹을 수 없다고 흔한 주정을 한 그날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날이 바로 그날이다 내가 꾸렉이라고 말한 날이다 한 병의 술을 더 마실 수밖에 없던 그런 그날이었다 

나는 그날 그 아이에게 음모가 자라고 있다는 선포를 들은 그날 꾸렉이라고 말한 그날 친구야 너와 술 한 병을 더 먹은 그날 돌아오는 길에 하나의 금을 보았다고 생각했다 주황빛 백열등만이 도로를 적시고 있던 그 거리에서 나는 하나의 금을 보았다고 생각했다 꾸물꾸물 이 세상에 균열이 작게 하나 그어졌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지 않았다 

그날의 다음 날 학교 교무실은 뉴스로 시끌법석했다 나는 그 이유를 몰랐다 너는 그 이유를 알 것이다 그날의 다음 날의 아침 너는 나처럼 그날의 술이 남기고 간 여진 때문에 몰랐을 것이다만 이제 너는 알 것이다 그날 그 아이가 내게 음모가 자라고 있다고 폭로한 날 내가 꾸렉이라고 말한 날 용서하지 못한 날 술로 벌준 그날 너가 부축해야 했던 날 바로 그때 대통령의 아들이 국비로 국민의 세금으로 자기가 살 집을 샀다는 것을 인터넷을 통해 누군가가 폭로했는데 너가 아직까지 그날의 술이 남긴 진동에 흔들리지야 않을 테니 이도 모르진 않을 것이 아니냐 그래 그날이 그날이었다 그 난리가 난 그날이었다 

그날의 다음 날 그러니까 학교가 소란스러웠던 그날 그 아이는 나에게 무언의 기대를 갖고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 시선을 느꼈다 아니면 나 자신이 그 아이에게 무언의 기대를 갖고 그 아이를 바라보았기에 그 아이를 향한 나의 시선에 대한 답변을 나를 향한 그 아이의 시선이라고 오독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단 하나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친구야 너에게 내가 말해줄 수 있는 것은 그 아이와 나는 한 번 더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것이다 바로 그날 그날의 다음 날 그날 한 번 더 다른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것이다 

아침조례를 용하게도 탈 없이 마치고 교실을 나서던 차였다 그 아이가 다가왔다 그 아이는 비밀을 공유하는 동지로서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그때까지도 도무지 뭐가 어찌 어떻게 돌아오는지 감도 배도 못 잡고 있었지만 그 아이는 나를 더할 것 없이 모든 걸 나눈 상대방으로 여기며 다가왔다 


한 가닥이 삐져나왔네요


나는 미치는 줄 알았다 아니 미쳤다 오 초 동안 완전히 돌아버렸다 콧구멍으로 털이 아니라 뇌가 삐져나왔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미라를 만들기 위하여 시체의 콧구멍에 쇠젓가락을 집어넣어서 뇌를 빼듯이 콧물이 콧털을 따라 흘러나오듯이 뇌가 삐져나왔다 뇌를 다시 집어넣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기나긴 시간이었다 아주 길었다 

너가 술을 많이 마신 날이기도 했다 그날의 다음 날인 그날 우리는 또 만나 술잔을 맞부딪히지 않았던가 그날의 다음 날의 저녁은 TV가 있는 작은 호프집에서 만났었다 그렇지 않았느냐 아마 무슨 경기를 보자는 이유에서였을 터였으나 너는 그날 경기를 보지 않고 경기를 일으킨 참이었다 참으로 경기를 살리지 못하는 대통령 덕이었다 세련된 듯하려고 세련되지 못한 그림을 걸어놓은 그 호프집에서 틀어놓은 뉴스 프로그램에서는 대통령을 내놓은 여당에서 선거방해를 했다는 속보가 우리가 정신줄을 놓을 때까지 술을 마시게 우리가 술잔을 놓게 놓아주질 않았기 때문이었다 너는 그날 그러니까 그날의 다음 날 그래서 술을 그렇게 많이 마신 것이었다 

무슨 놈의 나라가 하루 걸러 사고가 터지냐며 너는 분통을 터뜨렸다 변비로 막힌 너의 항문보다도 자주 이렇게 굵직굵직한 똥덩어리들을 토해낸다고도 말했다 경기는 잊고 술을 마셨다 

너의 이야기는 사회전반으로 범위가 확장되었다 너는 너와 내가 이상한 시대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너는 너와 내가 너무나도 이상한 시대에 살고 있어서 너무너무 속이 상한다고 말했다 모두가 거짓말을 하고 모두가 거짓말을 하는 것을 알고 있고 모두가 거짓말을 하는 것을 알고 있는 것도 알고 있지만 아무도 무엇을 어찌할지를 모르는 시대라고 말했다 너무나도 이상한 시대지만 너무너무 이상한 시대에 오래 살아서 너도나도 이상한 줄 모르는 듯하다고 너는 말했다 

기억할 것이다 그날 술값을 내가 더 많이 냈다는 것을 너는 기억할 것이다 나는 너의 과음이 술값을 내지 않으려는 잔머리가 아닌가 고민하며 너를 부축해 술집에서 너를 끌어냈다 겨우겨우 너를 택시에 집어 던진 뒤 나는 어정쩡하게 깨고야 만 취기를 어쩔 것인가 얼떨떨하게 길 위에 서서 고민했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그 길 맞은편 건물 가운데 걸린 커다란 TV가 도시 가운데 도심 가운데 건물 가운데 걸린 커다란 TV가 그 안에 보여주는 뉴스의 화면 가운데 있는 한 남자가 무언가 거무튀튀한 무언가의 끈 같은 것에 매달려 조롱하듯 조종당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 순간이었다 한 남자가 TV가 걸린 커다란 건물이 세워진 도심이 있는 도시에 있는 나의 눈에 무언가 거무튀튀한 끈에 매달려 졸리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 그 순간에 나는 그 아이가 어디 있을지 문득 궁금해졌다 


다음 날 그러니까 그날의 다음 날의 다음 날 내가 너보다 적게 먹고 많이 낸 그날의 다음 날의 다음 날 세상의 균열을 본 그날과 TV 속 남자가 조종당하는 모습을 본 그날의 다음 날의 다음 날 출근인지 등교인지를 한 날 나는 누군가에게 말했다간 날 한심한 눈으로 바라볼 황당한 가설을 떠올리고 날 향해 그냥 웃고 말았다 

그 아이도 알고 있을지 모른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날 대통령 아들의 세금 착복과 그날의 다음 날 여당의 선거부정 이 세상의 균열과 꼭두각시들 그리고 여기에 얽힌 비밀을 그 아이가 알고 있을지 모른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나 자신이 생각해봐도 한심한 노릇이라고 긴장된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그날의 다음 날의 다음 날의 점심시간이었다 학생들은 급식을 비우고 운동장으로 나가거나 책상에 엎드려 자거나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거나 책을 읽거나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거나 교무실에 와 심부름을 하거나 하였다 교무실에 와 심부름을 하는 학생은 그 아이였다 바로 내가 바로 직전까지 떠올리고 있던 그 아이였다 

그 아이는 전 시간이 체육수업이었는지 체육복을 입고 있었다 땀이 조금 흘러 짧은 머리카락이 뺨에 달라붙어 손을 대어 떼어주고 싶은 욕망에 델 것 같아 나는 나의 철없는 심장을 훈계해야 했다 그 나이 또래의 학생들처럼 혈색 좋은 뺨에 운동으로 달아올라 상기된 그 아이는 증기기관처럼 씩씩대고 있었다 전 시간이 체육이었을 것이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나의 웃기지도 않은 가설을 그 아이에게 이상해 보이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들려줄 요량으로 손을 흔들어 그 아이를 불러 세웠다 세웠다만 나는 그 아이에게 어떻게 이야기를 꺼내야 좋을까 이렇게 불러 세운 게 이상하지 않을까 그제야 떠올라 우물쭈물 손을 부채 부치듯 흔들었다 

영문을 아는지 모르는지 토익이 만점은 될 듯한 그 아이는 내 하릴없는 손 부채질의 바람을 쐬고 싶다는 듯 두 눈을 감고 고개를 내밀어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한 땀 한 땀 바느질하는 장인의 손길로 부채질을 하려 했다 

그때 나는 맡았다 그 아이의 땀내를 맡았다 교무실을 가득 메운 에어컨의 메마른 공기를 짓밟는 그 땀내를 맡았다 친구야 나는 맡고 말았다 노폐물마저 싱싱한 그 아이 맡고 말았다 농밀하여 기체가 아닌 고체로 나의 비강을 메워 터질 것 같은 은밀하고 역겨우며 중독될 것 같은 땀내였다 내가 맡은 것은 그런 냄새였다 그 아이의 발냄새를 맡을 수 있다면 나는 다른 누구를 제치고서라도 교무실 땅바닥에 엎드려 코를 박는 추태를 기꺼워 할 것이다 지금에 와서도 나는 그럴 것이다 발바닥이라도 한 번 핥을 수 있다면 요거트 뚜껑 핥듯 집요히 혀를 놀릴 것이다 

나는 다시 너를 불러 술을 마실 염치는 없었다 그날도 마시고 그날의 다음 날도 마시고 너는 이틀 모두 곤죽이 되어 떡이 되어 먹기 좋게 넉다운이 되었는데 어찌 그날의 다음 날의 다음 날도 술을 마시자고 불렀겠느냐 그저 너의 술 냄새 맡는 재주가 나 못잖아 나를 용케 찾아내어 함께 또 술을 마시긴 했다마는 말이다 

가벼이 맥주로 목에 낀 때를 밀고 나서 나와 너는 거리로 나섰다 목에 끼인 때를 벗겼으니 위장을 침범한 녹을 긁어내자는 셈에서였다 그리고 그 거리에서 나와 너는 보았다 종로 거리 커다란 TV 아래 TV에서는 나오지 않는 풍경을 보았다 커다란 개미 떼 같은 전경 무리가 거리를 메운 시위대를 몰아세우는 풍경이었다 빌딩 위 커다란 TV의 아나운서가 과도하게 섹시했다 붉은 입술로 입도장을 찍은 듯 거리가 빨갛게 물들었다 

나와 너는 그 시위대의 무리에 휩싸일까 두려워 물러났다 어린 시절부터 데모와는 멀었다 나와 너 모두 그들을 이해한 적이 한 번도 없을 터이다 그러나 내 눈에는 시위대보다도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보였다 털이었다 나는 거리에 돋아난 긴 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 긴 털을 모른 체하는 너와 시위대와 전경들은 이해할 수 없다 못해 믿을 수 없었다 나의 두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친구야 너는 정녕 그날의 다음 날의 다음 날 그것을 보지 못했느냐 술에 취해 보지 못했느냐 이 땅에 자라난 음모를 보지 못했느냔 말이다 

그것은 분명 음모였다 가늘고 꼬불거리고 검은 와중 매끈하게 광택을 내는 음모였다 나는 세계에 무수한 잔금이 그어진 거라 생각했다만 곧 그것이 도시에 자라난 음모임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인형을 조종하는 끈이라고 생각했다만 그것이 도시에 자라난 음모임을 느꼈다 

개미처럼 빛나는 헬멧을 쓴 투구를 쓴 전경들은 종로 한복판 아스팔트 도로를 뚫고 자라난 음모 한 가닥 한 가닥 매달려 있었다 개미처럼 빛나는 헬멧을 쓴 투구를 쓴 전경들은 그들을 묶은 음모가 그들을 이끄는 대로 무기력한 표정을 지은 채 개미처럼 먹잇감인 시위대 진열을 갉아먹어갔다 음모가 분명했다 그들을 엉켜 묶어 무관심한 폭력으로 떠미는 음모 가닥가닥들이 사람만 한 기다랗고 거뭇하고 반딱이는 음모가 체모가 분명했다 

어쩌면 그냥 검은 줄이 아니었냐고 너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니다 너는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 나는 알았다 그 검은 터럭에서 나는 냄새는 아는 냄새였다 그 아이의 냄새였다 싱싱하게 상한 그 냄새는 그 아이의 냄새임을 착각할 리 없다 나는 이 도시에 자라난 음모가 기다란 털이 사람을 묶을 만큼 짙은 음모가 굵다란 털이 썩어가는 냄새로 자욱한 음모가 싱싱한 털이 그래서 음모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 누구도 너도 전경들도 시위대도 보지 못하는 그 털이 나만 알고 나만 보지 않을 수 없는 그 털이 음모라고 꼬불꼬불한 모습과 광택과 냄새로 그 있을 수 없을 만큼 길고 굵은 아스팔트 무기물에 돋아난 존재를 음모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맞았다 그 아이가 맞았다 음모가 자란다 이 도시에는 음모가 자란다 그 아이의 상한 냄새가 나는 음모가 자란다 나는 되뇌었다 냄새가 나는 음모가 나는 음모가 냄새가 음모가 나는 나는 그 아이가 음모가 나는 냄새가 나는 음모가 친구야 나는 


나는 출근을 점심께야 하고 말았다 그날의 다음 날의 다음 날의 다음 날 나는 출근인지 방황인지를 모를 무언가를 점심 때 학교로 가는 것으로 종결지었다 왜냐고 묻는다면 답할 길이 없다 너보다도 술을 적게 마셨던 내가 왜 늦었을까 긴 밤 눈떠 새우고 아침까지 도시를 헤맨 내가 왜 학교도 가지 않았을까 거리를 메운 전경들을 마리오네트처럼 묶은 털 사이를 헤매기만 했을까 뭐라고 답해야 할까 모르겠다 아마 음모 때문이라고 기억하지만 학생인 그 아이가 학교가 아닌 어디에 있는지 몰랐다고 하면 그것도 선생으로서 우스운 노릇이 아니겠느냐 

나는 복도를 뛰었다 복도를 뛰지 말라고 써져 있었지만 나는 복도를 뛰었다 텅텅텅 텅빈 복도에 텅텅텅 소리가 가득 찼다 교실은 모두 수업 중이었는지 복도에는 나를 막을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복도를 뛰었다 교실 문을 열었다 그 아이의 반이다 

수많은 눈이 나를 향했다 당연한 일이다 교실 안에서 선생님이 수업하시는데 교실 문을 열고 선생님이 수업을 망치겠다는 듯 씩씩거리면서 들어왔으니 말이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는데 그것이 학생들의 소란인지 나의 혈관의 담합인지 지금 생각해보면 갸우뚱한다 

선생님이 나를 향해 다가와 나는 선생님을 밀쳤다 학생들도 밀쳤다 미쳤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어느 것이 정확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친구야 나는 그 아이를 찾았다 있었다 그 아이는 있었다 진짜다 진짜 있어서 나는 너무 기뻤다 또는 무서웠다 그 아이의 눈을 보았다 무서웠다 그 아이가 나를 보는 그 두 눈은 무서운 것을 보는 두 눈이었다 나는 그 아이가 무서운 것을 보는 눈으로 나를 보는 것이 눈물이 나도록 무서웠다 무서워서 눈물이 나는 나를 무서운 눈으로 그 아이의 눈이 보고 있었다 

나는 그 아이를 일으켜 세웠다 두 손으로 어깨를 강하게 붙잡아 흔들었다 그 무서운 두 눈은 이제 흔들리기까지 했다 그 아이 주변에 앉은 학생들은 자리를 뒤로 물렸다 커다란 원이 만들어졌다 그 아이는 그 아이의 두 눈은 그대로였다 떨렸고 두려움으로 가득 찼다 눈물이 차올랐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울었다 


선생님 

무서워요 


나도 그랬다 무서웠다 그 아이도 역시 나랑 같이 두려웠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음모가 무섭지 않았겠느냐 나 역시 그랬다 다만 그 아이도 음모가 무섭다는 것은 음모가 무섭다는 확증이었으므로 무서운 것은 여전했다 무서운 음모다 무서워 무서워 땀이 등줄기를 타고 내려 서늘했다 그 서늘함은 시원함과 섬뜩함의 둘 중 하나였을 텐데 구분이 가지 않는다 

교실에 소란스러움이 가득 차고 그 아이의 어깨를 꽉 쥔 내 손에도 힘이 차고 그 아이의 눈에도 눈물이 찼다 학생들이 나를 비난하기 시작했지만 원통했다 그 학생들도 음모를 봤다면 그 아이가 내게 보여준 그 음모를 봤다면 나를 비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 친구야 너도 나를 비난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무서움을 참아내고 간신히 이 사태를 고발하여 나의 결백함을 증명하고 그 아이의 음모를 만천하에 폭로하여 평화로운 세상을 되찾을 셈이었다 그럴 셈이었다 입을 열었다 혀가 떨렸다 


음머


눈을 뜨니 양호실이었다 나는 그렇게 울고 기절했던 것이다 양호실은 조용했다 나와 그 아이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그 아이는 침대에 누운 내 옆에 앉아 나를 보고 있었다 숏커트 머리에 닿을 듯 치켜 올라간 눈꼬리와 접힌 미간은 아직 어려 주름이 남지 않을 듯 순결했다 


경솔하셨어요


몽롱함 속에서 나는 그 아이의 책망을 온몸으로 맞았다 어떤 음모보다도 그 표정이 두려웠다 그 아이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혼이 나 울먹이는 아이를 달래는 엄마와 같은 미소로 울먹이는 나를 달랬다 


자요


그 아이는 내 이마에 손을 댄 뒤 양호실을 나섰다 나는 다시 잠들었다 다시 일어났다 그 아이는 없었다 양호실에는 나뿐이었다 이마에 남은 온기를 필사적으로 찾았다 아마 다시 찾은 듯하다 나는 확실히 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교실에 들어가니 선생님과 학생들이 나를 바라보았다 몸은 이제 괜찮으냐며 상냥하게 안부를 물어왔다 학생들은 언제나의 심드렁한 표정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모두들 방금 전의 일도 그 아이와의 일도 모른다는 듯 그대로 그대로였다 그리고 나는 발견했다 교실 바닥에서부터 자라난 음모를 음모들이 학생들과 선생님을 묶고 있다는 것을 반질반질 검고 짙은 빛을 반사하는 길고 꼬부라진 털이 사람들의 목과 손목과 발목에 뒤엉켜 제멋대로 움직이며 놀고 있었다 음모였다 친구야 모두들 잊고 있었다 나는 이 음모의 목적이 알 수 없는 공포가 조금씩 나를 죄어오는 것을 느꼈다 

교실 바닥에 난 금도 그 금을 뚫고 자라난 음모도 모두 선생님도 학생들도 보지 못한다 나는 음모가 꿈틀거리며 나에게 다가오는 것을 짓밟고 비명을 지르며 바깥으로 뛰쳐 나갔다 학교 바깥은 도시 안은 음모로 가득했다 건물 하나하나를 덩굴이 타오르듯 음모가 감고 있었다 지금처럼 도시가 음모에 갇히고 만 것은 그때부터였다 정확한 시간은 몰라도 바로 그때부터였다 

나는 음모 속을 헤치는 한 마리 사면발이와 같이 도시를 헤맸다 음모에 가려 길이 보이지 않았다 그 아이를 찾았다 그 아이의 음모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흐드러지게 썩은 생생한 그 아이의 내음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상하고 역하며 달콤한 향을 내는 음모 숲 속의 산림욕은 내 심신을 돌아버리게 만들기 충분했다 

음모 속에서는 많은 것이 보였다 나는 거리를 가득 메운 음모 속에서 많은 것과 마주쳤다 음모 너머로 반짝이던 커다란 원반에서 눈이 큰 나신의 외계인이 내려와 소들의 피를 빨아먹었다 광장을 가득 찬 음모 사이로 김광석이 노래하는 모습을 보노라니 역시 그가 죽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수많은 음모 위에서 수천만의 노무현이 땅으로 추락하고 있었다 케네디와 마릴린 먼로가 춤을 추는 사이로 유대자본을 필두로 한 시오니스트가 음모를 엮어 만든 수용소에 나치를 상대로 제 2의 홀로코스트를 열고 있는 속에 사이보그 히틀러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김정일이 수돗물에 탄 불소를 아리수라고 들이마신 이들이 치아건강과 함께 공산주의 빨갱이로 세뇌되어 붉은악마 유니폼을 입고 대한민국을 외치고 있었다 여배우 김꽃비가 우주대통령 취임식을 선포하는 영상이 종로 한복판에 송출되며 서태지의 서른두 번째 이혼설과 여든여섯 번째 부인에 대한 이야기가 자막으로 나오고 있었다 세튼은 송아지였고 서울대학교의 비밀 연구소에서는 둘리가 빙하 타고 내려와 브라퀴로 불알을 긁는 브라질 사이로 타블로의 출신대학이 북한의 김일성대학이라는 속보가 소소히 들려왔다 

타워팰리스에 올랐다 옥상으로 올라갔다 음모로 뒤덮인 이 도시에서 서울에서 기다랗고 굵은 음모가 아직 감싸 오르지 못한 건물은 타워팰리스뿐이었기 때문이다 한 층 한 층 타워팰리스를 걸어 올라가는 것은 이 도시에 대한 순례나 다름없었다 도시의 역사만큼이나 많은 것들을 도시의 역사만큼이나 오랜 시간에 걸려 거쳐야 했다 옥상에는 그 아이가 있었다 당연하다 그 아이 말고 누가 있을 수 있겠느냐 팰리스의 맨 꼭대기 위에 드러누운 그 아이가 잠든 모습은 음모의 숲 속에 잠든 미녀로다 

그렇다 그 아이는 타워팰리스 옥상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이 도시가 썩은 것들로 가득 차 멸망하고 있다는 것도 아랑곳 않고 양손을 가슴에 얹은 채 교복의 모습 그대로 순수를 간직한 채 그대로였다 이 도시에서 음모에서 유일하게 벗어난 이곳이라도 그 아이와 그 아이의 음모에서 나는 역취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하늘을 바라보니 음탕한 달이 떠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커다란 달은 가운데에 세로로 커다랗게 갈라진 틈 옆으로 수북하게 털이 자라나 있다 달에 갔다 온 것도 음모였다 역시 그랬다 나사는 십자였다 달은 커다란 보지였다 그 보지는 너무나 거대해서 지구에 살고 있는 이라면 누구나 보지 않을 수 없는 보지였다 

달은 잠기듯 내려온다 저 음모에 둘러싸인 보지가 곧 지구를 삼킬 것이다 아마 하루나 이틀이면 될 것이다 나는 음모로 가득한 서울의 한가운데 높이 솟은 타워팰리스에서 교합을 기다린다 달에서 눈물이 흐른다 나는 침을 삼킨다 

그 아이에게 다가간다 나는 지구를 구하기 위해 인류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위해 타워팰리스 옥상에 누워 있는 그 아이에게 다가간다 교복차림의 그 아이는 팬티 속에 음모를 숨기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아이에게 다가간다 

나는 발치에 무릎 꿇어 숨을 고른다 그 아이의 호흡이 느껴진다 나는 신부의 베일을 벗기듯이 그 아이의 교복치마를 걷어 올린다 손이 떨린다 이 안에 모든 음모가 있을 것이다 이 세상을 움켜쥔 음모가 인류 전원을 먹어치울 그것이 있을 것이다 두 손이 의지를 벗어난다 

치마 속의 팬티를 벗겼다 음모는 없었다 그 속은 순결하고 공허했다 그 속에는 우주가 있었다 별이 빛나고 은하가 흐르는 아름다운 밤하늘이 우주가 있었다 어둠 속에 무수한 생명을 담은 우주가 있었다 나는 우주를 느꼈다 우주에서는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어둠과 빛뿐이었다 그 아이의 팬티 속은 그저 어둠과 빛뿐이었다 그 아이의 팬티 속에는 우주가 있었다

나도 그 아이 속으로 돌아가려는 듯 무릎 꿇고 그 우주 속으로 들어가려 내 머리를 박았다 그 아이의 가랑이 사이에 머리를 박아 넣은 채 엎드렸다 이대로 나는 종말을 기다릴 셈이다 친구야 미안하다 인류의 멸망에도 나는 아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 아이의 팬티 속에는 우주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저 텅 빔으로 가득 찬 우주가 있었다 음모가 없었다 아무 음모도 없었다


이 도시다 이 도시는 음모가 자라는 도시다 자라난 음모가 도시에 가득하다 미역처럼 흔들리며 무성하게 빽빽하게 도시에 깨어 있는 이들 잠들도록 음모는 독촉한다 보이는 것에 눈을 감고 들리는 것 귀를 닫으며 깨어난 이 잠들라는 음모로 가득 찬 이 도시는 음모가 자라는 도시다 친구야 어쩌냐 나는 불면증이다 그 아이를 만나고 나는 불면증이다 음모가 나를 감싸도 잠은 오지 않는 불면증이다 불면증이다 그러나 음모가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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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안만용 가르바니온』 저자


“뭐라구? 아몬틸라도라구? 큰 통으로? 그럴 리가? 카니발이 한창인 때에!”

“그러니 미심쩍단 말이네. 그리고 어리석게도 자네에게 상의도 않고 술값을 모두 지불해버렸다네. 자네를 찾을 수 없었지만, 좋은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말이야.”

“아몬틸라도라구!”


「아몬틸라도의 술통 The Cask of Amontillado」 에드거 앨런 포 Edgar Allan Poe


약 70여 년 전, 에드거 앨런 포가 쌀쌀한 뉴잉글랜드 가을날씨 속에서 옷깃을 여미며 쓴 글은 21세기 어느 교실에서 읽혀지며 한 아이의 식욕食慾을 자극하게 된다. 그리고 여러분께서 보시다시피 그 아이는 자라서 훌륭한 폭음가가 되어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꺄르륵. 죽은 포가 보면 화를 낼지 손뼉을 쳐줄지 의문이다 (포는 알코올 의존증으로 죽었습니다-_-). 그는 자신의 글을 통해 인간의 어두운 본성인 악의, 복수심 등을 말하려고 했지만 모든 일에 식食이 우선인 필자는 악의고 나발이고 그건 내 알 바 아니고(-_-) 포르투나토가 죽기 직전까지 부르짖던 술이 궁금하였다. 아몬틸라도! 아몬틸라도! 대체 이 술은 뭐길래 포르투나토가 눈을 뒤집고 환장해서 몬트레소르를 따라가는지. 그렇게 맛있나. 마시고 죽으면 꿀때깔 귀신이라도 될 수 있나. 시바! 너를 격하게 먹고 싶다!!


스페인이 자랑으로 내세우는 것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바로 와인, 그것도 주정강화 와인인 셰리와인이 아주 유명하다. 여기서 말하는 주정은 그 주정(a.k.a 진상) 말고 술의 도수를 뜻한다. 하긴 도수가 높으니 진상질도 2배가 되어 주정강화 와인은 맞다만. 셰리와인의 이웃사촌이자 친척으로는 바로 옆 나라 포르투갈에서 나오는 포트와인이 있는데, 둘 다 일반 와인에 비해 알코올 도수가 2배가량 높다. 차이점은 포트와인은 레드와인을 사용하는 반면 셰리와인은 비노 블랑코(Vino Blance화이트 와인), 팔로미노Palomino라는 황금빛이 도는 포도 품종을 사용한다. 색이 깊고 진할수록 그 셰리와인의 알코올 농도는 높은데 아몬틸라도의 경우 중간 단계 정도. 아니 그런데, 이 스페인 출신 와인이 왜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아몬틸라도의 술통」 단편에 나오게 되었느냐. 


셰리와인은 17세기 이전에 스페인의 항구도시 헤레스 데 라 프론테라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셰리라는 이름이 어원도 바로 이 도시의 이름에서 온 것 (셰리는 스페인어로는 헤레즈 Jerez. 우리가 말하는 셰리Sherry는 영어식 발음이다). 건조한 안달루시아 지방의 기후를 이용, 여러 해 동안 공기에 노출시킴으로써 기존의 와인을 증발-농축하는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지는데, 와인을 꼬들꼬들 말린다고 표현해도 좋을 법하다. 그러던 것이 19세기 초 새로운 와인 숙성법인 솔레라 시스템이 발견된다. 새 와인 숙성법으로 만들어진 셰리는 기존보다 더욱더 독특한 풍미를 가지게 되어 유럽인들의 이목을 끌었고, 이 붐이 일어난 것이 바로 포가 소설을 쓰고 있을 무렵인 19세기 중반이었다. 이 빅 웨이브는 탈 수밖에 없잖아! 

그런데 왜 하필 스페인 와인이었나. 와인이라면 프랑스가 독보적이지 않는가? 슬프게도 그 무렵 프랑스 포도농장은 꿈도 희망도 없던 시망 상황이었다. 와인 생산 1~2위를 다투던 프랑스는 혁명 이후 ‘이제 귀족에게 뜯기는 거 없으니 나도 돈 되는 와인 만들어서 부르주아지 되야징!ㅋ’ 하고 시작된 와인의 과잉생산으로 인한 질의 저하를 겪고 있었다. 그리고 과잉생산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이 채 오기도 전에 프랑스 전역에서 포도나무 기생충이 생겨 와인 생산자들의 뒤통수를 가차없이 날려준다. (이젠 정말 끝이야) 경제적으로 망하기 전에 물리적으로 시궁창이 되어 쓰리아웃 당하고 폭망의 길을 걷고 있었던 프랑스 와인은 20세기 초까지 복원산업을 하는데 그 와중에서도 성질 급한 프랑스인들답게 막 시위하고 정부 욕하고 사람도 죽고…… 하여간 다사다난했다. -_-; 역시…… 혁명한다고 왕의 모가지를 딴 패기의 나라.


또 한 가지, 소설 안에서 주인공 몬트레소르와 포르투나토는 괴랄한 복장이다. 몬트레소르는 가면에 망토를, 포르투나토는 광대 복장을 하고 있는데, 이로 보아 배경일은 사육제 마지막 날인 ‘기름진 화요일’일 확률이 높다. 혹시 마디 그라Mardi Gras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맞다. 바로 그 마디 그라가 바로 이 ‘기름진 화요일’을 뜻하는 날이다. 이날은 금육이 시작되는 사순절 바로 전날이며,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나라 되찾은 백성처럼 술을 먹고 고기를 마시며(?) 방탕하게 노는 날이다. 어느 정도로 방탕하게 노냐면 ‘와! 내가 이렇게 개돼지다! 내가 이렇게 축생같이 논다!’ 라는 것을 숨기기 위해 시작한 것이 축제 분장과 가면이라고…… 왠지 치킨이랑 피자를 각각 한 손에 들고 “그래! 다이어트 시작하는 거야! 내일부터!”라고 외치는 사람의 환영이 보이는 듯하지만 어쨌거나. 이렇게 노는 날이니 포르투나토가 이미 거하게 취해 있었던 것도 납득이 간다. 그러던 중 몬트레소르가 와서 ‘아저씨, 좋은 거 있어요’ 속삭이니 얼씨구나 좋구나 하고 따라간 거고. 그 때문에 포르투나토는 와인 대신 저 자신이 50년 동안 푹 숙성되어버리는 기구한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소오름.



이렇게 긴 숙성 기간을 거치는 와인치고 셰리와인은 비싸지 않고 요즘은 한국의 많은 바에서도 취급하고 있다. 그 독특한 풍미를 맛보고 싶은 사람은 한 번쯤 마셔보라고 권하고 싶다. 단맛이 강하면서도 은근하게 도수가 쎈 술이므로 작업주로도 적극 추천하는 바. 덤으로 셰리와인은 각기 다른 연도의 와인이 한 번에 섞여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빈티지를 표시하지 않는다 (빈티지가 적혀 있지 않다고 하여 싸구려 와인이 아니라는 것). 달큰한 과일향과 고소한 견과류 향을 동시에 맡을 수 있는 특이한 매력을 가진 술이다. 마시는 도중에 누가 좋은 거 있다고 따라오라 하면 절대 따라가지 말길 바라며. 





타할陀轄

음식, 공포, 미술, 섹스에 관한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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