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환상문학웹진 거울에서 처음으로 비평선 『B평』을 만들 때, 몇 차례의 회의가 진행되었다. 첫 기획 회의에서는 이 비평선의 방향이 주된 의제였다. 필진 선정부터 작품 선별 등 전체적인 구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 제시된 아이디어 중 하나는 한 작가를 선정하고 여러 필진이 그 작가에 대한 작가론과 작품론 등을 쓰는 방식이었다. 그러니까, 예를 들면 ‘이영도’ 작가를 대상으로 한 이영도 비평선을 내는 것도 괜찮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건 여러 아이디어 중 하나였고 실제로 진행된 것은 아니지만 필자의 머릿속에는 깊은 인상을 남겼다. 과연 문학 계간지 『작가세계』나, 이문열이나 무라카미 하루키를 대상으로 여러 필진이 참여한 평론서 같은 작업이 한국 장르소설계에도 가능할 것인가?
몇 년이 지나서도 그 아이템이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 것은 필자가 비단 이영도 작가의 독자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어느덧 국내에 판타지 소설이 자리 잡은 지 십 몇 년이 지났지만, 판타지 소설에 대한 정밀한 비평이나 연구는 전무한 실정이다. 그 당시에는 막 걸음마를 시작한 시점이라 무리였다고 해도, 이제는 비평서나 연구서가 등장할 시점이 되지 않았을까. SF나 추리, 무협이 다양한 이론서나 연구서, 비평서가 출간된 것에 반해 한국 판타지 소설은 잘 조명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시작할 수 있을까. 한국 판타지 소설을 연구한다면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릴 이름은 이영도일 것이다. 신작이 출간 안 된지 몇 년이 지나도 아직까지 가장 많이 회자되는 이름. 한국 판타지 소설의 대표적인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으나, 막상 그에 대한 심도 깊은 비평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개별 작품에 대한 분석 및 작가론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팬들에 의해 과장된 부분도, 제대로 읽지 않은 사람들에 의해 과소평가된 부분도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오류만이 증식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현재 이영도는 학계에서 어떻게 다뤄지는가? 요즘은 청소년 시절에 이영도 작가의 판타지 소설을 읽은 독자층이 대학원에 진학한 시점이다. 따라서 이영도 작가가 들어간 학위 논문들을 찾아볼 수 있다. 그 수가 많지 않지만, 한국 판타지 소설이라는 분야를 상기할 때,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때 이영도가 다뤄지는 몇 안 되는 판타지 작가라는 것도 생각해볼 지점이다. 일종의 연구사 검토 식으로 몇 개의 논문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2007년 대중서사연구 제17호에는 숙명여대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안지나의 「‘판타지’ 소설의 이데올로기 연구 - 『드래곤 라자』를 중심으로」가 게재되어 있다. 이 글은 『드래곤 라자』를 중심으로 판타지 소설에 나타난 이데올로기의 모순을 지적하고 있다. 2009년 한국문예비평연구 제30집에 실린 김종태·정재림의 「창작교육적 관점에서 본 판타지의 서사 방법-『반지의 제왕』 『나니아 연대기』 『해리포터』 『드래곤 라자』를 중심으로」는 창작교육적 입장에서 판타지 서사를 분석하고 있다. 여기서 『드래곤 라자』는 『해리 포터』와 함께 4장에서 서사 방법에 대해 논할 때 다뤄지며, 『드래곤 라자』의 휴머니즘에 대해서도 이야기가 나온다. 같은 해, 충북대학교 교육대학원 김지연의 석사 논문 「사이버 판타지 소설의 놀이성 연구 : 이영도의 『드래곤 라자』를 중심으로」는 작품을 놀이적 서사구성으로 분석하며, 사이버 공간에서 연재된 작품의 특성을 논한다. 2011년 남서울대학교 허만욱 교수는 우리문학연구 제34집에 학술논문 「한국 판타지 장르문학의 흐름과 발전 전략 연구」를 게재한다. 여기서는 일반적인 한국 판타지 장르문학을 흔히 인터넷에서 나누는 기준인 1, 2, 3세대로 나누어서 대략적인 흐름을 분석한다. 이때, 다른 글의 인용이 중심이 되지만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것은 역시 이영도의 『드래곤 라자』다. 심도 있는 주제와 대중성을 무기로 장르문학으로서는 경이적인 판매 부수를 보이며 대중에게 판타지를 인식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평하고 있다. 2011년 강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김혜영의 「판타지소설의 재미담론 연구」는 이영도 작가의 『눈물을 마시는 새』를 중심 텍스트로 삼은 박사논문이다. 재미에 관한 논의와 판타지에 대한 시선을 지배 담론으로 풀어냈다. 흥미롭게도 ‘눈마새 위키’나 ‘카페 드래곤라자’를 비롯한 약 10곳의 인터넷 사이트를 중심으로 팬덤의 정보 수용과 재미 담론을 이야기하고 있다. 또, 2011년 한국교원대학교 강소향의 석사논문 「판타지소설의 문학성 연구 : 이영도의 『눈물을 마시는 새』를 중심으로」는 세계관의 독창성과 내적 리얼리티, 현실에 대한 사유를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문학성을 평가하고 있다.
한편, 작품 분석이 아니라 다른 주제에서 언급되는 경우가 있는데, 2010년 단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문예콘텐츠 전공 이세인의 「MMORPG의 판타지 스토리텔링 연구 : 이영도 소설 『드래곤 라자』의 게임 스토리화를 중심으로」라는 석사 논문처럼 게임과 관련된 논문들과 2007년 중앙대학교 신문방송학 오혜영의 「인터넷 콘텐츠의 단행본 출판에 관한 연구 : 인터넷 소설, 블로그 연재물, 웹툰의 출판을 중심으로」라는 석사 논문처럼 인터넷 문예콘텐츠물로써 다뤄지는 경우가 꽤 있다.
전체적으로 학계에서 이영도를 다루는 방식은 초기작인 『드래곤 라자』의 비중이 높으며, 개별 작품의 분석보다는 대중소설 또는 판타지 소설의 사회적 시선에 대한 반박적인 면이 많다. 작품보다는 작품을 둘러싼 관계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다른 작가들은 이름과 작품만이 언급되는 정도이며, 이에 대한 의미와 가치를 짚어보는 연구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다시 비평의 필요성 또는 가능성을 생각하게 된다. 한국 판타지 소설의 비평은 필요한가. 또 가능한가.
비평은 작품을 평가하거나 경향을 짚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비평은 지금 그 작품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는 길잡이 역할을 한다. 한국 판타지 소설의 특징을 파악하고, 가치를 면밀하게 살펴본다면 작가와 독자에게 긍정적인 작용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한국 판타지 소설의 미학을 알고 있을까. 한때의 흥밋거리로만 지나간다면 수면 아래로 모든 게 잠겨버릴지도 모른다. 비평이나 연구 같은 ‘담론’은 일종의 부력이다. 작품을 시간 속에 묻히게 만드는 게 아니라 계속 새로운 의미로 독자에게 다가가게 만든다. 신작에만 집중하는 시선을 돌려, 우리는 이제 한국 판타지 소설이 어디까지 왔는지 봐야 할 때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 첫걸음부터 돌아봐야 할 것이다. 보이지 않는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과거를 돌아보는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이전 한국 판타지 소설에 대한 비평이 더 체계적으로 다양하게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날개
숭실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동대학원 석사.
환상문학웹진 거울 필진. 날개를 펴는 곳(http://twinpix.egloos.com) 블로그 운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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