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는 가장 뒤처진 걸음까지
보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단편 수록 순서는 어떻게 정한 건가요? 「악어의 맛」이 표제작인 이유도 궁금한데요.
주로 편집장님이 정하셨어요. 「밥줄을 지켜라」가 가장 읽기 쉬워서 맨 앞에 들어갔어요. 반대로 「너의 낡은 캐주얼화」나 「노병들」은 한국의 현실이 많이 반영된 이야기라 뒤에서 같이 묶였고요. 「악어의 맛」은 제일 우화적이고 상징적이라 나머지를 포괄할 법해서 표제작이에요. 「로보를 위하여」는 심각한 부분은 덜어낸 이야기라서 쉬어가는 의미로 중간에. 부록 만화는 그리신 분이 더 줄이면서 훈훈한 하이틴 로맨스로 만들어주셨어요.
화자도 거의 여자이고, 여자이기 때문에 겪는 상황이 많이 나오잖아요. ‘여성’이라는 게 중요한 주제인가요?
의도하고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은 없어요. 전 제가 여성이라는 걸 많이 의식하는 여성이에요. 그래서 소설을 쓸 때도 그게 기본적으로 큰 줄기를 차지하는 것 같아요.
“소설 쓰는 사회주의자”라는 별명이 붙어 있는데요. 그보다는 “사람이 먹고는 살아야 하지 않느냐”는 그런 강박, 모두가 공감할 만한 출발점이 있는 것 같아요.
그게 바로 사회주의죠. 전 마르크스의 위대한 점이 그거라고 생각해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이야기했단 거. 이 소설에서 분명하게 사회주의라고 할 건 별로 없어요. 말하자면 노동운동이죠. 저는 스스로 사회주의자라고 생각하지만, 활동가와 예술가의 역할은 달라요. 활동가로 있으려면 대중보다 앞장서려는 의지가 필요하죠. 그와 달리 예술가는 가장 뒤처진 걸음까지 보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세계가 모순 덩어리라면, 그 모순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이고요. 어차피 현실을 벗어난 이야기를 하는 건 불가능하잖아요. 저는 계급투쟁 이야기를 다루고 싶고, 그게 제가 직시하는 현실이에요. 그러니까 전 제가 자리한 현실에 대해, 굉장히 뒤처진 걸음, 보기 힘들고 부담스러운 것, 말하기 어려운 것까지 통틀어 바라보는 작업을 하려고 해요. 그리고 그게 문학이 혁명의 전장에 뛰어드는 방식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념을 담은 소설에는 계몽주의가 묻어나잖아요. 그런 느낌은 안 나거든요.
그렇다면 저에겐 매우 기쁜 일이에요. 제 소설이 다른 지향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재미있었으면 좋겠어요. 소설을 쓴다는 건 사회를 반영하는 작업인 거고, 어떤 정치적 지향을 갖든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공감할 만한 통찰이 있기 마련이잖아요. 그렇지 않다면 저는 실패했다고 생각해요. 소설은 예술이잖아요. 결론에는 동의하지 않아도 그 과정에는 공감할 수 있죠. 그런 부분이 제 소설에 있으면 좋겠어요.
사회를 표현하고 싶다면 꼭 장르문학을 쓸 필요는 없잖아요. 그런데도 장르적 요소들이 들어가서 개성을 만들어내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노병들」은 능력자들이 나오긴 하지만 보통의 슈퍼히어로물과는 다른 재미를 취하고요. 말하자면 ‘<어벤저스>의 60년 후’?
이건 제가 계산해서 쓰는 건 아니고, 취향인 것 같아요. 장르를 좋아하는 거죠. 장르의 문법이나 분위기도 좋지만 무엇보다 장르적 서사에 매력을 느껴요.
이 소설이 어떻게 읽혔으면 좋겠는지. 그리고 어떤 작가가 되고 싶은지.
일단은 재미있게 읽혔으면 좋겠어요. 소설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재미라고 생각해요. 팸플릿도 아니고 교과서도 아니잖아요. 재미있어야죠. 그리고 어쨌든 저는 세상의 모순을 잘 반영하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전 세상이 그렇게 희망적이고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보단 모순투성이라고 생각해요. 좋은 방향으로 굴러가는 것처럼 보일 때조차도 전체적으로 보면 악화되는 부분도 품고 있죠. 동시에 굉장히 나쁠 때조차도 좋아질 가능성을 품고 있고요. 전 그 모순을 발견하고, 그에 대해 생각하고, 그런 방식으로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 방법을 고민하고 싶어요. 이면의 일그러진 부분들을 지켜볼 힘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라키난
책과 밥을 주면 글을 씁니다. 고료도 좋아합니다 .
거울에서 기사필진으로 주로 인터뷰 담당, SF도서관에서 행사와 판매 담당.
현재는 평화로운 일개 취업자를 간절히 지망.
장래희망은 안락의자 탐정 타입의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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